성경적 경제관: 르호봇경제(1) 연재를 시작하며

글 김태구 박사 (노무라금융투자 CRO, 경제학박사)

2022-10-06 11:26:35  인쇄하기


르호봇경제는 성경적 경제관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적 경제관은 성경적 세계관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돈을 다루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는 누가 주인이 되는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르호봇경제는 하나님이 주신 법과 기준이 얼마나 탁월한 지를 증거하려고 합니다. 르호봇경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김태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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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구 박사 (노무라금융투자 CRO, 경제학박사)

구원 받은 성도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돈과 재물, 부와 관련해 마땅히 지녀야 할 성경적 경제관을 갖지 못한 채 하나님의 영광과 동 떨어진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수십 년간 금융관련 분야에서 연구해온 경험과 전문가로서 르호봇경제연재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망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세계관과 명문고

국내에 널리 알려진 명문고가 있습니다. 부모 세대에는 경기고, 경복고, 서울고, 경북고와 같은 고등학교가 명문고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요즘 세대에서는 한국외고(용인), 대원외고, 서울과고, 하나고, 중동고 등이 명문고에 순위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등학교가 명문고로 인정받는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서울대에 진학하는 학생의 숫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가 성공으로 가는 직행 티켓이라는 믿음이 강건합니다. 자녀교육에 ‘All-in’하는 강남 엄마들은 명문고 순위에 대하여 빠삭합니다. 이러한 정도이니 명문고의 기준에 이견을 달기가 어렵습니다.

20223월에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한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중동고 교장 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대략 내용이 이러했습니다. “여기는 사람을 교육하는 학교지, 입학 성적으로 먹고사는 학원이 아니다. 앞으로도 서울대에 몇 명 보냈느냐에 일희일비 마시라. 서울대 몇 명 보냈냐는 질문은 이제 그만!” 강남 8학군 교장은 명문고는 서울대에 몇 명을 보냈느냐가 아닌, 이 학교를 나온 동문들이 사회에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명문고의 기준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명문고로 인정받고 있는 학교 중 필립스 아카데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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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아카데미 전경

이 학교는 미국이 독립한 후 177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인 부시와 그의 아버지와 동생 등 3부자가 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필립스 아카데미는 동문 35명 중 1명꼴로 미국 명사 인명사전에 올라있고, 백만장자가 되는 비율이 가장 높으며, 초일류 대학 진학률도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학교의 교육은 어떻게 하면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할까, 어떻게 하면 성공하여 부자가 될까를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이 학교의 건학 이념은 “Not for Self”입니다. 즉 공부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어느 학교가 명문고인가요? 명문고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까요

명문고를 둘러싼 논쟁은 사실 세계관의 논쟁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서울대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학교가 명문고라는 그 세계관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해왔습니다. 세계관을 다르게 정의하면 무엇을 가치 있게 보느냐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의 기준에 따라 명문고는 달라집니다. 이론적으로 명문고는 세계관의 개수만큼 존재합니다. 물론 주류가 되는 세계관이 있고 그렇지 않은 세계관이 있을 뿐입니다 

구원과 세계관

구원도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의 가치관은 송두리째 바뀌어야 합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가치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지역의 성도들에게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3:2) 위에 것을 생각하는 자는 예수님의 세계관으로 사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애굽의 세계관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불러서 하나님의 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지켜 행하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Great Nation)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4:6)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관을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관으로 사는 큰 나라 백성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가 애굽의 세계관을 배격하고 큰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 애굽을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 큰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 가나안을 살리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맺음말

현대사회는 그야말로 상대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주신 절대기준이 많은 기준들 중의 하나로 폄하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모든 분야를 다스리는 주권을 가진 그리스도가 통치하지 않는 부분이란 단 일 인치도 없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합니다.

앞으로 연재될 르호봇경제는 성경적 경제관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적 경제관은 성경적 세계관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돈을 다루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는 누가 주인이 되는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르호봇경제는 하나님이 주신 법과 기준이 얼마나 탁월한 지를 증거하려고 합니다. 르호봇경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다음글: 애굽으로 돌아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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