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내 분쟁이 생기는 여러 요인중 가장 빈번한 것이 재정문제로 인한 것이다.
그 가운데 목회자에 의한 재정문제로 분쟁이 생기는 경우에는 복잡한 양상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목사를 두둔하거나 엄호하려는 ‘친위파’, 그 반대로 잘못을 지적하며 개혁하려는 개혁파가 극한 대립을 하게 되고 이를 외면하는 침묵 또는 이탈로 항변하는 ‘침묵파’도 생긴다. 분쟁이 오랜동안 지속되며 고소 고발이 난무하게되면 본질은 호도된다. 교회정상화는 고사하고 결국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이다.
재정사고 유형도 다양하지만 교회 헌금을 정당한 절차 없이 개인적 치부수단으로 이용했다거나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 하더라도 그 실제 내용이 개인의 치부와 연관되었다면 이는 성전을 이용해 장사를 한 장사치처럼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에 속한다.
예수님께서 돈으로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 대해서 분노하셨다. 요한복음 2장 13절- 16 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그렇게 겸손하고 온유하고 사랑이 충만하던 예수님이 이 순간만은 태도가 돌변하셨다.
■ 왜 예수님은 당시 관행처럼 여겼던 일들에 분노하셨을까?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이 성전에 있었던 이유는 제사를 드리는데 사용할 제물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준비했던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짐승을 데리고 왔지만 오는 도중에 상처가 날 수도 있었다. 이런 짐승을 상처 나지 않은 것과 교환해서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도왔다. 환전소는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야 하는데 로마 돈은 이방인의 화폐이기 때문에 하나님 집에 돈을 낼 때는 세겔로 바꿔야 했다. 그래서 로마의 화폐를 세겔로 바꿔주는 환전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그 일 자체는 필요하고 좋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좋은 동기로 시작했다.
그러나 환전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챙겼고 이익이 생기니까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예배를 지배하게 됐고 성소는 탐욕의 도가니가 된 것이다.
성전에서 물건을 바꿔주는 사람들이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점점 심해져 제사장과 짜고 물건을 팔고, 예배에는 관심이 없고 장사에 우선순위를 두고 신경을 썼다. 사람들의 눈은 모두 이익에 충혈되었다. 예수님은 이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교회 재정문제가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진 문제라면 마땅히 예수님이 분노하실 일이다.
교회성도나 목사가 교회 헌금을 정당한 절차 없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치부했다면 그것은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이다.
교회가 여러 사역을 하면서 처음엔 좋은 동기, 선한 동기로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그것이 이해관계와 맞물리고 이익이 생기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짐승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복음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그 안에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있는 것은 지금이나 예나 똑같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적을 베풀고 격려하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불의를 심판하시고 거짓에 대해 진노하고 잘못에 대해 채찍질을 하신다.
진정한 사랑은 죄를 덮어두지 않고 죄를 치워주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잘못을 못 본 척 지나치지 않고 그 사람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대신 치른다.
더러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복음을 운운하며 ‘마귀의 종노릇 한다’며 비난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무지의 수치인 것이다.
또 목사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라며 목사를 건드려서는 안된다 고 말한다. 이 역시 무지의 소치이다.
하나님 앞에 평신도나 목사나 다 같은 자녀일 뿐 특권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깨서 성령으로 인치신 모든 성도는 만인제사장 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분노하시는 행위에 대해서 배울 점이 있다.
첫째 예수님은 문제의 근원을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여 부를 축척하는 근원들을 내치셨다는 점이다.
교회에서 재정비리가 생겼다면 기존 관행을 과감하게 혁파하고 시스템적으로 행정적으로 그 근원을 개혁하는 것이 먼저이다.
둘째, 예수님은 사람에게 야단은 치지만 사람에게 회복할 기회를 주셨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양과 소는 내쫓고 돈 받는 상을 뒤 엎으셨다 그런데 사람은 때리지 않았다. 성전모독을 한 자들을 죽일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배울 점이다.
우리의 문제는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사람을 치는 데 있다. 정의롭게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자기의 분노가 지나쳐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도덕적 수치를 주는 일을 쉽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람을 파멸시키고 죽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그 죄에 대해서 나무라시지만 정작 그 사람에게는 용서와 재기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나가 죽어라” 아니고 “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은 죄에서 돌이킬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준 것이다.
성전을 더럽히는 문제의 근원을 버리고 새롭게 단장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며 그러나 과정에서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설 기회를 줘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발행인 윤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