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의 사명은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특히 종교 언론은 그 어떤 매체보다 도덕적이어야 하며, 한 영혼의 명예와 신앙의 본질을 다루는 만큼 공정함과 신중함을 생명으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계 일각에서 이단전문언론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특정 단체나 개인을 향한 '이단 낙인찍기'를 수익 모델로 삼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신앙의 파수꾼이 아닌, 신앙의 숙주를 갉아먹는 ‘이단 기생충’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기득권 교권주의의 나팔수가 된 언론
현대종교, 교회와신앙 등 이들 매체가 다락방의 현장의 복음 운동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보도 행태는 목불인견이다. 이들의 펜 끝은 성경적 진리나 복음의 열매를 향하지 않는다. 대신 기득권을 쥔 교단 권력의 입맛에 맞는 논리를 생산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나팔수 역할을 자처한다. 이는 언론의 중립성을 스스로 포기한 채, 교권주의라는 거대 권력에 매몰된 비정상적인 보도 행태다. 공교롭게도 이들 매체의 발행인, 창업자가 과거 이단 조작 전력, 이단을 빌미로 돈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난 공통점이 있다.
이단 논쟁을 생계 수단으로 삼는 ‘공포 마케팅’
이들의 가장 추악한 단면은 이단 논쟁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구조적 모순에 있다. 이들에게 '이단'이 사라지는 것은 곧 자신들의 밥줄이 끊기는 것과 같다.
이들은 건전한 전도운동조차 악의적으로 프레임을 씌워 복음전도를 방해한다. 이것은 성경적 다락방 전도운동을 방해해온 교권주의에 아양을 떨며 낙인찍기를 통해 마치 다락방을 막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불안과 공포를 조성한 후원금과 광고 수익이 그들의 생계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들은 복음의 본질보다는 편협하고 주관적 신학적 잣대나, 말꼬리 잡기식 비판거리 사냥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은, 마치 숙주가 죽지 않을 만큼만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연명하는 기생충의 생태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균형을 상실한 흉기, ‘편향된 보도’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대상의 반론권을 보장하고, 그들이 맺고 있는 전도의 열매와 긍정적인 변화를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 하지만 '이단 기생충'이라 불리는 매체들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짜맞추기식 보도만을 일삼는다. 성경적 전도 운동이 현장에서 일으키는 회복과 생명의 역사는 철저히 외면한 채, 지엽적인 꼬투리와 과거의 논쟁만을 무한 반복하며 비난의 수위를 높인다. 이것은 보도가 아니라 언론이라는 흉기를 휘두르는 폭력이다.
결론: 기생의 사슬을 끊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타인의 신앙을 정죄하고 파괴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비극적인 역사는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성경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자신들만의 낡고 편협한 잣대로 현장의 뜨거운 전도 운동을 훼방하는 이들은 더 이상 신앙의 동역자가 아니다. 이제 깨어 있는 성도들은 분별해야 한다. 누가 진정으로 현장에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이며, 누가 그 길목을 막아서서 갈등을 조장해 자신의 배를 채우는 '기생자'인지를 말이다. 진실은 권력의 펜 아래 숨겨지지 않으며, 복음의 생명력은 기생충의 방해에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 발행인 윤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