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택과 결단 ⑥ 아도니람 저드슨 (Adoniram Judson, 미얀마)

미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 '미얀마 선교의 개척자’

2026-03-11 17:52:22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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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람 저드슨 (Adoniram Judson)

미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이자 '미얀마 선교의 개척자'인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의 생애는 안락한 미래를 뒤로하고 영원한 가치를 선택한 한 인간의 위대한 결단을 보여줍니다. 그의 일대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전도자의 '위대한 선택과 결단'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아도니람 저드슨은 '성공'이 보장된 인물이었습니다. 브라운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적인 지성을 가졌고, 21세의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직을 제안 받을 만큼 장래가 촉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정된 삶이라는 넓은 길 대신, 복음의 불모지인 미얀마라는 좁고 험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178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브라운 대학교에 16세의 나이로 입학하여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해 촉망받는 인재 였습니다.

1. 안락함을 버리고 사명을 선택하다

저드슨의 첫 번째 위대한 결단은 기득권의 포기였습니다. 대학 시절 친구의 영향으로 이신론(Deism)에 빠졌으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격한 후 큰 충격을 받고 회심하여 앤도버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810년 동료들과 함께 미국 최초의 해외 선교 단체인 '미국 회중교회 해외선교위원회(ABCFM)' 설립한 후 1812년 그는 미국 선교 위원회(ABCFM)의 파송을 받아 아내 앤 허셀타인과 결혼 후 인도 선교사로 선교여정을 떠났습니다. 항해 중 성경 연구를 통해 침례교로 교단을 바꾸는 중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이 선택으로 인해 기존 후원자들의 모든 지원이 끊기는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신념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2. 절망 속에서도 인내를 결단하다

1813년 인도 정부의 거부로 미얀마(당시 버마) 랭군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사역 시작을 시작했습니다. 미얀마에 도착한 저드슨을 기다린 것은 환영이 아닌 지독한 고독과 고통이었습니다. 첫 개종자를 얻기까지 무려 6년의 시간이 걸렸고 1819년 첫 미얀마인 개종자(마웅 나우)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처절했던 '아바(Ava)와 아웅펜레(Aungpenla) 투옥기'는 신앙의 인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눈물겨운 대서사시입니다.

1824년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이 터지자, 미얀마 정부는 백인인 저드슨을 영국의 간첩으로 의심해 체포했습니다.

그는 '사형수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밤마다 죄수들의 발을 높이 매달아 피가 머리로 쏠리게 하는 고문을 당했고, 다섯 겹의 무거운 쇠사슬이 그의 발목을 짓눌렀습니다. 덥고 습한 미얀마의 기후 속에 창문 하나 없는 감옥은 오물과 악취, 전염병의 온상이었습니다. 저드슨은 영양실조와 열병으로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들었습니다.

저드슨이 감옥에서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아내 앤의 초인적인 헌신 덕분이었습니다. 앤은 만삭의 몸으로 매일 감옥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간청하며 남편에게 음식을 전달했습니다. 그녀는 감옥 근처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며 남편 곁을 지켰습니다.

투옥 중 아내 앤은 딸 마리아를 출산했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피로와 영양부족으로 젖이 나오지 않자, 앤은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마을의 수유 중인 여인들을 찾아다니며 구걸하듯 젖을 먹여 아이를 키웠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826년 저드슨은 석방되었으나, 기쁨도 잠시 그를 기다린 것은 감당하기 힘든 상실이었습니다. 옥바라지로 건강이 완전히 망가진 아내 앤이 석방 직후 열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어 6개월 뒤에는 투옥 중에 태어난 딸 마리아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미얀마 땅에 묻은 저드슨은 깊은 우울증에 빠져 한때 숲속에 구덩이를 파고 고독하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미국으로 돌아가 쉬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내가 이곳을 떠나면 이 땅의 영혼들은 누가 돌보는가"라며 미얀마에 남기를 자처했습니다.

저드슨은 가족의 무덤이 있는 그 땅을 차마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슬픔을 승화시켜 미얀마어 성경 번역에 더욱 몰두했고, 결국 1834년 성경 전체를 완성하며 미얀마 선교의 거대한 뿌리를 내렸습니다.

저드슨이 이 어둠을 뚫고 나온 계기는 역설적으로 자신보다 더 고통받는 미얀마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고독한 칩거 중에도 자신이 번역한 쪽복음을 읽고 변화된 미얀마인 신자들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나의 슬픔보다 이들의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는 숲에서 내려와 다시 펜을 잡았습니다. 슬픔을 잊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맡기신 '언어의 사역'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3. 영원한 유산을 남긴 최고의 선택

저드슨의 가장 빛나는 업적은 28년에 걸친 헌신 끝에 완성한 미얀마어 성경 번역입니다.

저드슨은 옥중에서 지켜낸 번역 원고를 바탕으로, 매일 12시간 이상 번역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것을 넘어, 미얀마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수천 번의 수정을 거쳤습니다. 그는 "미얀마 사람들이 읽을 때 외국인이 쓴 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겠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마침내 1834131, 그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포함한 미얀마어 성경 전체 번역을 마쳤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번역된 마지막 쪽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며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번역본은 문체가 너무나 유려하고 정확하여,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미얀마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표준 성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글을 맺으며:

그가 겪은 17개월의 투옥과 가족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저드슨이 미얀마에 처음 도착했을 때 기독교인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미얀마에는 7,000명 이상의 침례 교인과 100여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의 결단은 감정적인 열정을 넘어선, 소명에 대한 처절한 책임감이었습니다.

그는 미얀마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사전과 성경을 남겼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미얀마 기독교의 튼튼한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켰던 "하나님의 약속만큼 미래는 밝다(The future is as bright as the promises of God)"는 고백은, 비극 속에서도 소망을 선택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선언이었습니다.

이제 아도니람 저드슨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가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할 것인가?" 진정한 위대함은 성취의 크기가 아니라,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린 '결단의 깊이'에 있음을 그는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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