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조 목사에 대한 사이비 결의 해제로 섣불리 남의 신앙체험을 비난하거나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어야 했음에도, 통합측과 합동측을 비롯한 대교단 교권집단의 횡포는 그 후에도 지속되었다.
▲생전의 조용기 목사가 류광수 목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전 한기총 대표회장 엄기호 목사.
한국교회사 최초로 예장통합측에 이단사이비로 정죄되었다가 10년 만에 해제되었던 고 조용기 목사. 그러나 1983년 통합측의 사이비 결의 이전이나 1994년 해제 때나 조 목사의 신학과 신앙이 크게 달라진 것이라곤 없었다.
그렇다면 통합측 총회가 처음부터 이단이나 사이비로 볼 수 없는 조 목사의 신학과 신앙을 억지로 트집 잡아 순전히 교권의 힘으로 사이비로 매도한 것이라는 지적이 가능한 일이다.
1983년 통합측 총회는 조용기 목사에 대해 “이 같은 사이비 운동은 광신적 혼미를 가져올 우려가 농후하므로 이에 동조 또는 추종하거나 혹은 강사로 조청하거나 그런 집회에 참석하는 일이 없도록 신하 교회에 시달하여 이에 미혹되는 일이 없도록 함이 옳을 줄 안다”라고 결의하였고, 제69회 총회에서는 그에 대한 지침서를 발간키로 채택하고, 통합측 총회는 '이단 사이비 시비 지침서' 를 만들어 전국 소속 교회에 배포함으로써 조용기 목사를 사이비로 확정했다.
10년이 지난 1994년 제79회 통합측 총회는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가 제출한 “조용기씨의 사이비성에 대한 연구 결과 보고서”를 채택하고 조 목사에 대한 사이비 결의를 해제했다.
통합측은 조 목사의 사이비 결의를 해제하면서, "우리는 우리 교파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인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과 현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 및 1986년에 총회가 채택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표준으로 하여 기독교신학의 정통성을 가늠하지 않고, 우리교파가 세계교회와 공유하고 있는 '성경', '고대 에큐메니칼 신조들‘ 및 WCC의 교리헌장과 신앙과 직제의 문서들을 조용기씨의 '사이비성' 시비의 표준으로 삼았다. 우리는 우리가 채택한 이 표준에 의하여 조용기 목사의 성경관, 삼위일체관, 기독론, 복음,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을 연구해본 결과 조용기씨의 설교와 신학은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사도적 보편교회의 신앙과 일치하면서도, 우리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지적한 문제점들은 대체로 오순절 교파의 특수성에 관련된 것들이 많고, 또한 조용기씨 자신의 오류도 부분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조용기씨가 1984년 본 총회에 제출한 '서신'과 1994년 본 총회 총회장에게 보내온 '서신' 에서 그 자신이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고, '잘못된 점을 수정해 나갈 것' 이라고 전해 왔으니, 우리는 상호간에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의 구성원들로서 이 민족의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받아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라고 총회에 보고했다.
이로써 조용기 목사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기독교사상 최초로 이단사이비로 정죄되었다가 해제되는 사례를 남겼다. 그러나 통합측 총회는 이로써 처음부터 한국교회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조 목사에 대한 정치적 이단 시비를 했음을 시인한 꼴이 되었다. 왜냐면 통합측 스스로 자신들이 사이비 신앙운동이라고 “지적한 문제점들은 대체로 오순절 교파의 특수성에 관련된 것들” 이라고 시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단이나 사이비 문제는 신학적, 신앙적 문제인데 어떻게 사과' 로 풀릴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이런 논리를 적용한다면 여타 이단 문제도 대상자들로부터 '사과' 를 받고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총회 후에 통합측 사이비이단대책위원으로 활동하던 최삼경 목사는 조 목사에 대한 사이비 해제에 불만을 품고 “조 목사의 신학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총회는 이단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이단으로 본다”며 교단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사실 1983년 통합측의 사이비 결의 이전이나 1994년 해제 때나 조 목사의 신학과 신앙이 크게 달라진 것이라곤 없었다. 그렇다면 통합측 총회가 처음부터 이단이나 사이비로 볼 수 없는 조 목사의 신학과 신앙을 억지로 트집 잡아 순전히 교권의 힘으로 사이비로 매도한 것이라는 지적이 가능한 일이다.
[조용기 목사의 이단시비 발생부터 해제 까지의 전말]
∎ 조용기 목사 이단 시비의 발단은 순복음교단 내부에서 촉발
세계최대 단일교회를 이룬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趙用基) 목사에 대한 이단 시비는 여타 이단 시비 경우와 달리 자파 순복음교단 내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조용기 목사는 당시 80년대 초만 해도 한국교회에서는 아직도 신흥교단에 불과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일명 순복음)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교단은 1901년 1월 초에 미국에서 일어난 현대오순절운동으로 생겨난 교단이다. 처음에는 방언을 성령세례의 증거로 본다고 하여 미국의 주류교회로부터 이단시 되었다.
방언과 신유를 강조하며 “성령 충만” 또는 “성령 세례”를 부르짖는 이 순복음교회의 한국선교는 1928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사실상 선교활동은 해방 후에 본격화 되었다. 순복음교회는 해방 전까지만 해도 한국교회에서 “방언 패거리 이단” 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중앙교회(지금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금도 단일교회로서 세계최대 교회이지만, 그 당시에도 최대교회로 명성이 나 있었고, 기하성' 이란 교단 이름보다 오히려 조용기 목사가 순복음교회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조 목사는 일찍이 기하성 교단의 총회장 등 교단의 중직을 두루 거친 뒤라, 교단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고 마치 서대문에 본부를 두고 있던 기하성 교단이 순복음중앙교회의 산하기관쯤으로 취급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다가 조목사는 교단법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여 총회 임원진들과 자주 충돌했다.
또한 순복음중앙교회가 여의도로 이전한 후 갑자기 커지면서 장로교나 감리교 등 기성교회의 교인들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의 순복음교회 교인들까지도 순복음중앙교회로 옮겨가자 교단 내에서도 조 목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 중에서도 교단 내의 임원진과 조용기 목사 간에 심각한 갈등의 도화선은 신반포순복음교회(담임목사 박용래) 가입 건이었다. 박용래 목사는 본래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중앙교회 대교구장으로 촉망 받는 인물이였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1981년 1월부로 조 목사는 박목사를 남미 선교사로 발령했다. 박 목사는 이를 거부하고 신반포에 개척교회를 세워 기하성 강남지방회에 가입을 신청한 것이다.
수하에 있던 대교구장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서울에서 교회를 세우자 조 목사는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 그의 지방회 가입을 반대했다. 그러나 당시 총회장 조명록 목사를 비롯 여타 임원들은 박용래 목사의 신반포교회를 가입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임원회는 조 목사가 사사건건 월권행위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럴 때에 조 목사의 순복음중앙교회에서 조상제사 문제와 처녀부활 소동이 벌어져 교계와 사회에 물의를 빚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 목사는 “죽은 부모도 부모”라며, ‘부모가 돌아가신 날 부모가 살아계신 것처럼 그 앞에 제상을 차려놓고 십자가를 놓고 절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에 기하성 교단 실행위원회가 1981년 9월 15일 총회회의실에서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며 조 목사를 소환 심사 후에 교단의 교리나 헌장에 위배된 사실이 확인되면 목사직을 제명한다는 강경방침을 정했다.
이에 기하성 교단은 조 목사의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서 삽시간에 혼란에 빠져 들었다. 서울북부지방회장 조병호 목사를 비롯 12 지방회장들은 21일 교회연합신보 보도에 대한 해명서' 를 내고 교단임원회를 비난하고 나섰다. 실행위원인 그들은 총회장 회견이나 교계신문보도로 전해진 것들은 실행위원회에서 거론된 일이 없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에 분개한 순복음중앙교회는 당회장 조용기 목사와 전 당회원의 이름으로 10월 13일 교단에서 탈퇴를 결의하고, 다만 하나님의성회 선교부와는 유대를 지속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교계에 유포된 조상제사 문제를 해명했다.
“본 교회는 창립이래 23년간 20만 성도에 이르기까지 복음선교에 전념하여 왔으며 교단의 이념과 헌법을 준수할 뿐 아니라 교단의 발전에 기여하여 왔음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산하 전국의 25만 성도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연이나, 근간 본 교회를 비난하며 교단의 10년 증경총회장이며 20만 성도를 모시고 국내 선교뿐만 아니라 세계만방에 나가 복음선교에 진력하는 동역자를 모함하고 교단내 동역자들을 오도하며 분열을 획책하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내 일부교역자와는 뜻을 같이 할 수 없으므로 본 교회는 본의는 아니나 1981년 10월 12일자로 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로부터 탈퇴할 것을 선언하며, 하나님의성회 선교회측과는 관계를 유지하여 복음선교에 더욱 진력할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조용기 목사가 탈퇴를 선언하자 미국하나님의성회 한국선교부 허스트 목사는 총회의 경솔한 태도를 비난하며 조 목사에 대한 이단 시비는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허스트 목사는 총회장 조명록 목사와 총무 김진환 목사는 한국 하나님의성회 헌법을 위반했기때문에 제명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선교부의 이같은 조 목사 두둔성명은 총회측을 더욱 자극하여 선교부의 총재직까지 박탈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 기하성 교단은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 총회집행부를 중심한 기하성 서대문측, 조용기 목사를 중심한 예수교하나님의성회측(예하성), 양측 논쟁에 가담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교단을 만든 기하성 순복음측(신창균 목사 중심)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여론은 조 목사에게 불리해져 갔다.
자칫 이대로 가다간 이단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조목사는 11월 22일 교계신문에 다음과 같은 해명서를 내고 그동안 교계인사들과 소원했던 점을 시인하고 혜량을 베풀 것을 빌었다.
∎ 제기된 비난에 대한 조용기 목사의 해명서
“전국교회 교역자님들과 성도님들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본인이 해외에 선교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여 보니 본인에 관한 여러 가지 뜬소문과 본인을 비방하는 책자가 발행된 사실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해명을 드립니다.
1)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와의 관계
우리교회는 해외선교에 주력하고 있는 터라 교단과의 불편한 관계가 있어서 선교전략상 당회의 결의로 교단을 이미 탈퇴한 바 있아온데 아직 교단에 미련이 남아있는 것처럼 일부에서 오해하고 있는 듯하나 이제 전혀 관계를 끊고 상관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추호도 교단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음을 천명하는 바이옵니다. 다만 우리가 속해 있었던 교단인 만큼 향후 부흥과 발전이 있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2) 개인자격의 목사안수설에 대하여
우리교회는 해외선교에 주력한 관계로 일본, 대만, 호주, 중국, 아프리카, 구라파, 북미, 중남미 등에 1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저들이 각 임지에 교회를 세워 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들을 보호 육성하기 위하여 미국에 선교처를 두고 미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재단을 설립하였고, 각 지구마다 지방회가 조직되어 자체적으로 일본, 독일, 미국 등에 해당국의 인가를 받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바, 이들 졸업생들은 지방회에서 전도사 혹은 목사로 안수 임명하여 현지 선교사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본인이 개인자격으로 목사 안수한 사실이 없을 뿐 아니라 더욱이 국내에서나 혹은 비행기 안에서의 목사 안수설은 터무니 없는 허위사실임을 밝혀 드립니다.
3) 제사에 관한 시비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1979년 11월 12월 본인이 수차례에 응하여 가졌던 우리교회 성도들을 위한 성경강해 시간에 불신자를 주제로 인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면서 목회자의 고충을 설명하기 위하여 든 예화에서 파생된 오해인 줄 압니다. 그 당시 본인의 성경강해를 계속 듣고 있던 우리 교우들은 모두 그것이 불신자를 위한 일시적인 방편이란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아직도 오해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본인의 저서 '오늘의 만나 제1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사에 대한 본인의 견해는 '오늘의 만나 제1집(1978년 1월 14일발행)에 명백히 제시되어 있는 바, 부모 기일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면 “부모님의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여 온 가족과 친척이 모여 찬송부르고 기도하면서 부모의 은공과 덕행을 생각하는 추모예배를 드리라”고 권면한 바 있고, 이 견해는 추호도 변함이 없음을 천명하는 바 입니다. 항간에는 “조 목사는 부모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악의에 찬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으나 본인의 양친은 아직 건재하여 계시고 본인은 조상의 기일에 추모예배조차 드린 적이 없음을 밝혀드리는 바입니다.
4) 영락교회 K장로 병기도 문제
우리나라 어느 목사가 성도를 위하여 병자를 위한 기도를 드리기 전후에 헌금을 강요하거나 흥정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만약 이런 자가 있다면 심판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전혀 무근의 사실이 유포되고 있는 바 그 분의 유족이 건재하고 있으니 직접 물어 보시면 잘아실 것입니다. 막대한 헌금 운운은 전혀 조작된 사실입니다.
5) 소녀부활 문제
우리교회 부흥회 기간에 예배시간 직전 어떤 구역장이 우리교회 교인도 아니요, 본인과는 전혀 면식도 없는 소녀를 데리고 와서 자기가잘 아는 소녀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고 간증을 요청함으로 거절하고 예배에 들어가서 예배를 마친 후 광고시간에 어떤 구역장이 이런 소녀를 데리고 왔는데, 이러한 사실이 진실이라면 너무나 충격적이지만 나로서는 믿기 어려우므로 다음날 확실히 확인하여 다시 알리겠다고 했는데 그때 베란다에서 예배를 보고 있던이 소녀가 일어서서 손을 흔들며 회중에게 인사를 함으로 회중이 일시에 박수를 쳐주었으니 나로서는 불의에 일어난 일이요. 전혀 의외의 돌발사였습니다. 그 후에 이 사실이 허위임을 알아내고 다음 주일예배 후 광고시간에 공식적으로 이를 알리면서 미혹되지 않기를 당부하였고 모두 일소에 부친 일입니다. (이 소녀의 사건은 어떤 악질분자가 우리교회를 헐뜯기 위한 공작이란 설도 있습니다.)
6) 음담패설의 책자 발간의 건
자식이 아비를, 제자가 스승을. 후배가 선배를 헐뜯어 세상에 공포하고 비방하는 처사는 불신사회에서도 용납되지 못할 패륜의 일인데. 하물며 성직자로 자처하는 사람이, 교단의 기관지의 편집장으로서 교단의 록을 먹고 사는 사람이, 더욱이나 까마득한 후배 전도사가 교단 총회장의 비호아래서 교단의 증경총회장을 입에 못 담을 악담패설, 그것도 전혀 사실무근의 일을 날조하는 처사는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욱이나 74엑스포로, 77민족복음화대성회, 80세계복음화대회 등 건전한 성령운동을 마당굿으로 악평하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울려 춤을 추고 십자가 위에 연꽃을 피우던 예수 무당들이 제철을 만나 득세하였다”고 비평하는 처사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이요, 한국 기독교를 근저에서 뒤흔드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본인은 여하한 패설이라도 참을 수 있겠으나 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등불의 역할을 담당한 우리 기독교계가 이런 모략, 중상, 허위날조 비방의 책자를 (그것도 남의 이름을 빌려 책이나 팔아 보겠다는 저의로) 유포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풍조가 유행한다면 우리 한국기독교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될까 적이 근심하는 바입니다.
본인은 20여 년 동안 목회와 복음선교에만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오던 중 인간적인 인사나 교제가 소원했던 관계로 20만 성도를 인도하고 나가다 본인의 부덕의 탓이라 사료되기에 여러 선배 동역자님의 혜량을 빌면서 더욱 아낌없으신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 조용기 목사에 대한 이단 시비 확산
1) 김덕환의 “조용기 목사 그는 과연 이단인가?” 출판
그런 와중에 붙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당시 기하성 총회 기관지 '순복음‘지 편집장으로 있던 김덕환 전도사였다. 그는 기하성 교단내외에서 문제가 제기된 내용들을 모아 “조용기 목사 그는 과연 이단인가?” 라는 책을 발행, 전국에 배포함으로써 조 목사에 대한 이단 시비 여론이 확산되었다.
김덕환은 그 책에서 조용기 목사를 “기독교를 민간신앙으로 끌어내리는 사람” 이라고 평하고, 그의 치병치유기도도 최면술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그는 순복음중앙교회의 부활처녀 소동은 조작극이었고, 서울영락교회 K장로의 안수사건은 중세기에 편면죄부를 팔 듯 돈을 받고 신유치병기도를 하는 장사꾼이요, 종교 사기꾼이요, 사이비라고 맹비난했다.
심지어 김덕환은 한국 기독교 변질의 뿌리를 1930년대 이용도 목사의 신비주의, 1960년대 신앙촌 박태선 장로와 당시 기도원운동의 주역이었던 나운몽 장로, 통일교의 문선명, 1970년대에 와서는 조용기 목사를 위시한 일부 오순절 교파들의 신비주의로 그 계보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또 당시 세계종교현상연구소를 운영하던 감리교의 민병소 목사는 “순복음의 대명사 조용기 목사”를 내어놓았는데, 그는 여기에서 순복음중앙교회를 '조용기 분파로 보고, “사회적 신앙병리현상으로 진단했다. 또 김종열 목사는 "제사상 위의 십자가”를 내어 놓았다.
2) 크리스찬 아카데미 하우스의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현상 구조” 발표
또 크리스챤 아가데미 하우스는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현상과 구조”를 내어놓는 등 교계는 온통 조용기 목사의 신앙관을 비판하고 나왔다.
연세대학교 유동식 교수는 그 책에서 “한국교회와 성령운동"이란 제목으로 기독교의 성령운동을 부성적 성령운동과 모성적 성령운동으로 분석하고,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민중의 치유운동으로 모성적 성령운동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는 "순복음교회식의 성령운동은 단적으로 말해서 삼일적(三一的) 신이 없는 성령운동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창조하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며, 인격을 회복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없는 성령이란 결국 샤마니즘적인 주력(呪力)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성령의 권능이 생존적 가치와 연결되어 현세 이익을 추구하게 될 때, 이것은 결국 무교적인 구조를 못 벗어나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에 모성적 성령운동이 갖는 장점과 한계점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을 비판하는 책만 쏟아져 나오자 기하성 소속 안준배 목사가 “조용기 목사와 성령운동” 이라는 변증서를 발표했으나 교계의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예장고신 불건전한집단 규정 ‘집회 참석금지’
그렇게 되자, 예장고신측에서 재빨리 조용기 목사를 문선명과 박태선 집단과 같이 불건전한 집단으로 규정하여 산하교회로 하여금 그들의 집회에 참석을 금한다고 결의하고 나섰다.
4) 예장통합 연구조사 착수
그와 동시에 통합측의 지방노회들은 조용기 목사에 대한 이단 시비를 규명해 달라며 총회에 헌의했다. 이에 따라 통합측 총회는 1982년 9월 제67회 총회에서 “조용기, 권신찬 이단 시비 연구대책위원회(위원장 박치순 목사)를 구성하고 1년간 연구키로 결정했다.
통합측 총회는 조용기 목사에 대한 교단적 입장을 표명키로 한 이유를, 소속 교단에서 이단시비와 관련, 제명되었다는 신학적 문제로 집약된다고 말하고, 조용기 목사가 신학적 문제 외에도 개인 우상화, 재산 축적, 카리스마적 형상 등 문선명 박태선씨 등이 걸어온 길과 유사한 전철을 밟고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 예장통합측 총회의 조용기 목사 '사이비' 규정
통합측 총회 이단시비연구대책위원회는 단 1년간 연구한 후 (연구분담 문상희, 임옥), 1983년 제68회 총회에 조용기 목사의 설교와 그의 목회활동에 사이비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 총회가 이를 받음으로 조용기 목사를 사이비로 규정했다. 통합측 총회가 조용기 목사를 사이비로 규정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인도 제상을 차려놓고 조상 제사를 할 수 있다는 조상숭배 문제,
①제사의 기원과 동기
상고시대를 보면 우리 민족도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대자연에 대하여 경이와 공포를 느꼈다. ...그러므로 천지간의 신령에 대하여 가호와 감사의 제고로 시작하는 제사를 드려 인간에게 재액을 주는 악신령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제상과 제물을 차려 놓고 절하는 의식을 행한 것이다.
② 우상 숭배
지금에 와서도 조상들의 혼백을 잘 모시지 못하고 제사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액이 미쳤다고 묘소를 이장하거나, 제사를 성대히 거행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략)
③ 하나님의 금령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1계명에서 제사의 대상에 대하여 금령을 주셨고, 제2계명에서 어떤 형식이나 모양이나 행동으로도 제사하는 의식이나 방법에 대한 금령을 명하신 것이다. 즉 절하며 섬긴다는 것은 제사하는 형식이나 행동이나 방법을 뜻하는 것인데, 제상에 음식을 차려 놓는 형식이나 절하는 행동은 하나의 제사 형식인 것이다.
2) 순복음교회 여성 신도가 부활했다는 '처녀부활 사건'
① 죄와 사망에서의 구원
성경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계시한 것이며 그것이 곧 영생인 것이다(요 20:31.6:40).
② 영생의 부활
그런데 이 영생의 부활은 죄와 죽음이 심판을 받는 마지막 날에 가서 주시는 구원임을 성경은 명시하고 있다.
③ 신자의 부활
그러므로 신자의 부활에 대한 성경의 교훈은 마지막 날에서의 영화를 위한 부활로서, 마지막 날인 주님의 재림 전에는 육신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은 가르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예수와 사도시대 이후의 신자의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재림 때의 영화의 부활이 있을 따름인 것이다(요 6:39, 6:44, 12:48).
3) 영락교회 김치복 장로 치병 안수 문제
① 예수의 구원과 병 고침의 관계
예수의 구원은 육신까지 구원하는 완전 구원이며 또한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에 몸은 깨끗한 그릇으로 주님께 바쳐져 한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 (하략)
② 안수 문제
반드시 안수를 해야 병 고침을 받고 치병의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다. 무슨 은사이든 믿음으로 받는 것이며 인간의 공교한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다.
③ 감사의 사례
또한 이와 같은 구원의 은혜와 은사들은 거저 받은 은사이니 거저 주라고 분부하셨으며,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에도 그런 주의를 여러 가지로 환기시키셨다(마 10:5-8).
4) 정규 신학과정을 거치지 않은 '목사 안수 남발'
① 성직 안수의 중요성과 절차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목사로 세움을 받는 일은 참으로 신중하고 엄격한 자격과 절차가 있어야 한다. 본인의 확실한 소명감과 당회와 노회를 거쳐 정규신학을 졸업하고 총회의 고시와 절차를 밟아 정식으로 공회에서 안수를 받아 목사로 임직되는 것이다.
5) 무분별한 성찬
① 주님의 분부
성찬식은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친히 세우신 예식으로서 떡과 잔을 가지시고 축사하사 먹고 마시게 하여 주님의 재림 시까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전하게 하신 복음 신앙의 고백과 이를 전승하는 성례인 것이다.
② 성찬 참여의 기준
예수께서는 이 성찬을 지키라고 분부하실 때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을 금하셨는데 이것은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를 지칭한 것이다. 이런 무분별한 성찬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되는 것이며 또한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하셨다(고전 23:29).
6) 방언이 성령받은 증거라는 '성령의 증거'
성령세례의 증거를 방언을 말하는데 두고 있다.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을 받은 증거가 없는 것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사죄 칭의를 주시고 성화의 생활을 인도하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교리를 오도해 가는 경향이 있다.
성령의 증거는 중생(요 3:3,5), 진리를 깨닫고 복음을 이해하는 일(요 14:17, 27), 예수를 증거하는 능력을 받는 일(행 1:8),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일(갈 5:22-23)이다. 이러한 은혜를 감당하기 위하여 한 분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번째 위가 되시는 성령은 그 증거로서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다(고전 12:4-11).
7) 환상이나 방언이나 신유같은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불건전한 신앙운동
환상과 방언과 신유와 꿈과 예언과 기적 등을 강조하는 예배를 통하여 광신적인 신앙운동을 유도하며, 그것을 복음과 십자가 이상으로 치중함으로 미신적인 생활로 유도해 갈 우려가 다분히 있다.
8) 기성교회 교인 뺏기 교회 전도'
오늘 한국교회의 일부에서 건전하지 못한 신앙운동과 마찬가지로 전도의 개념을 왜곡시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즉 기성 교회 교인 뺏기와 같은 일로써 많은 교회와 교역자들에게 피해를 줌으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9) '기복주의적 축복과 구원 문제‘
조용기씨의 이른바 '삼박자 구원은 현세적인 성공의 삶과 물질축복과 육신적인 건강에 초점을 두고 영적으로 잘되는 일을 이 같은 축복의 한 방편과 같은 것처럼 가르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이런 은혜란 구원 얻은 자에게 수반되는 부수적인 은사인 것이다. 이렇게 현세중심, 성공중심, 물질중심으로 구원을 결부시킬 때에 우리 복음신앙은 하나의 기복신앙, 무속적 신앙으로 전락해 버릴 우려가 있다.
통합측 총회는 이에 따라 “이 같은 사이비 운동은 광신적 혼미를 가져올 우려가 농후하므로 이에 동조 또는 추종하거나 혹은 강사로 조청하거나 그런 집회에 참석하는 일이 없도록 신하 교회에 시달하여 이에 미혹되는 일이 없도록 함이 옳을 줄 안다”라고 결의하였고, '
제69회 총회에서는 그에 대한 지침서를 발간키로 채택하고, 통합측 총회는 '이단 사이비 시비 지침서' 를 만들어 전국 소속 교회에 배포함으로써 조용기 목사를 사이비로 확정했다.
■ 조용기 목사의 반론
이에 대해 조용기 목사는 통합측 총회를 향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금번 예장통합측 총회에서 저를 20세기 현대판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사이비목사로 일방적인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저를 아끼고 키워주신 선후배 목사님들에게 이와 같은 일로 심려를 끼쳐 드리게됨을 몹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부득이 이번 기회에 제 자신의 소감을 지면을 통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그동안 풍문으로는 예장통합총회에서 제 자신에 대한 이단 시비 연구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1년여 동안 그 위원회에서 저를 만나기를 요청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으며, 정식으로 제가 시무하는 교회에 조사단이 찾아온 적도 없었습니다.
재판이란 피고측과 원고측의 말을 다 들어보고 증언을 청취한 뒤 사실여부를 놓고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뿐 아니라, 더구나 일생을 바쳐 조국의 복음화와 주님의 명령을 쫓아 세계만방의 구원을 위하여 노력하는 한 목사에 관해서는 더더욱 신중을 기해 주실 줄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상적인 법 절차도 없이 악의에 찬 풍문에 근거하여 일방적으로, 그것도 한국을 대표한다는 교단에서 편견된 판단을 내림에 대하여 저는 놀랍고 심히 우려해 마지않습니다...“
그리고 조 목사는 여기에 이른바 '각종 사이비 사건에 대하여', 이른바 ‘부활처녀 소동사건', 이른 바 '장로 치병 안수 사건’, 이른 바 ‘목사 안수 남발’, 이른 바 ‘무분별한 성찬예식', '성령의 증거’에 대하여, 신앙운동에 대하여, 교회전도에 대하여, 축복과 구원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상세히 토로하고, “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화해와 단합을 모토로 하고 나온 대교단이 그 이상과는 판이하게 시기와 질투로 인한 심판으로 정죄한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의 대동단결을 파기하는데 대하여 통곡할 따름이다.” 라고 통합측을 맹비난했다.
이처럼 통합측 총회의 공식적 결의에도 불구하고 교계 인사들 가운데는 조 목사에 대한 사이비 결의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통합측 교단인사들 중에도 교단의 결의에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당시 통합측의 대표적 인물인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는 공개적으로 자신은 조 목사를 사이비 목사로 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해 교단의 결의를 무색케 했다. 그 결과 총회의 결의 후에도 통합측의 지도적 인사들이 조 목사와 같은 집회에 강사로 참여키도 하고, 장로회신학대학 교수들도 순복음중앙교회나 오산리기도원에 강사로 초청되어 갔다.
조 목사가 사이비로 정죄된 이듬해인 1984년 한국기독교 백주년기념대회(대회장 한경직 목사)는 통합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예 조 목사를 주강사로 세웠다. 특히 조 목사가 1989년 국민일보를 창간하자 통합측은 더 이상 조 목사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6. 통합측의 조용기 목사 사이비' 재연구 논란
그렇게 되자 조용기 목사는 통합측 총회에 사이비 결의 해지를 청원했다. 그러나 이대위는 이 기회에 조용기 목사에 대해 '사이비 로 재결의 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1993년 9월 총회에 보류한다는 보고서를 상정했다. 총회는 논란 끝에 연구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의했다. 이에 순복음교회는 두말할 것도 없고, 교계는 통합측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당시 통합측의 신현균 목사가 대표로 있던 한국기독교복음단체총연합(대표의장 신현균 목사)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는 예장통합측 총회가 한국기독교와 세계기독교의 지도자로서 국내외에서 성령운동을 통하여 영혼구원과 세계선교에 크게 이바지해온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 조용기(다윗) 목사의 성령운동과 목회사역을 문제 삼아 이른바 사이비 시비를 제기하고 이를 종결하지 않은 채 또 한 회기를 보류한 것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밝힌다.
예장통합측 총회가 조용기 목사에 대해 제기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이는 오순절 교파와 장로 교파의 신학적 견해에서 온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는 장로교 정치원리 제1장 제1조와 개인에게 양심의 자유가 있는 것 같이 어떤 교파 또는 어떤 교회든지 교회의 조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하신대로 설정할 권한이 있다' 는 정치 제2조의 정신을 명백히 위배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조용기 목사에 대한 통합 총회의 연구보고서는 모두가 확대 해석된 것으로 본다. 동연구서를 살펴본즉 통합된 구라파가 신흥로마를 상징한다든지, 인간의 삼분설 뜻은 설교자가 하나의 설을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이를 모두 비성경적인 것으로 매도하여 사이비 논리로 보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또한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는 행위는 오순절교회의 목회적 특징이다. 이를 사이비 시 한다는 것은 세계교회 가운데 지극히 일부이긴 하나 한국교회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신인동역설이니 신인합일주의니 하는 내용은 어처구니 없게도 조목사의 설교를 앞뒤 문맥을 잘라 연구자가 자의적으로 갖다 붙인 용어이지 결코 조목사의 사상이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기왕에 통합측 총회가 일년을 더 연구하기로 한 바 조용기 목사의 주장을 좀더 면밀히 검토하고 이해하여 사이비 논의가 종식되므로 한국기독교에 화해와 화합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통합측 총회의 조용기 목사 '사이비' 결의 해제
그런 분위기에서 통합측 총회는 조목사로부터 '사과문을 받는 조건으로 이 틈에 아예 사이비 결의를 풀기로 하고 연구위원회(위원장 한완석 목사)를 구성했다. 당시 조 목사가 통합측 총회에 보낸 사과 서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김창인 목사님께,
주님의 은혜 가운데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이래 한국교회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제 1천2백만이라는 교체로 발전한 한국교회는 바야흐로 한국의 미래를 영도해 나가는 민족교회로서 그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교제의 성장은 그동안 장자교단으로 한국교회를 선도하고 이끌어 오신 귀 교단의 노고와 헌신이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입니다.
<중략)
그동안 귀 교단에서 저에게 제시한 여러 질책과 비판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고 기도해 보았습니다.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당혹스러움과 저항감이 앞섰을 때도 있었으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여 자신을 돌이켜 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의 신학과 교리에 입각한 저의 목회사역이 교회가 급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다소간의 오해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간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설교나 또한 불충분한 설명으로 오해가 생겨난 것들에 대해 크게 죄송스럽게 생각하오며 앞으로 귀 교단에서 지적한 바를 보완하고 수정해 나감으로써 주 안에서 한국교회에 덕을 끼치는 사역을 이루어 나가도록 노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신앙과 인격이 부족한 데서 온 것임으로 주의 사랑으로 관용해 주시기를 바라오며, 이 모든 일을 계기로 자신을 깊이 반성하며 주의 종들의 질책과 가르침을 경청하려고 합니다. 부족한 저의 사역에 늘 관심을 가져 주시고 충고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본인은 지난번 1984년 7월 18일 림인식 총회장님께 보내드린 제 사과의 글에 대해 지금도 변함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계기로 더욱 더 한국복음화와 세계선교에 진력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사랑의 마음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오며 목사님과 귀 교단에 귀하신 사역 위에 주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1994. 8. 29. 교제 목사 조다윗 드림. .
이리하여 1994년 제79회 통합측 총회는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가 제출한 “조용기씨의 사이비성에 대한 연구 결과 보고서”를 채택하고 조 목사에 대한 사이비 결의를 해제했다.
통합측은 조 목사의 사이비 결의를 해제하면서, "우리는 우리 교파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인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과 현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 및 1986년에 총회가 채택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표준으로 하여 기독교신학의 정통성을 가늠하지 않고, 우리교파가 세계교회와 공유하고 있는 '성경', '고대 에큐메니칼 신조들‘ 및 WCC의 교리헌장과 신앙과 직제의 문서들을 조용기씨의 '사이비성' 시비의 표준으로 삼았다. 우리는 우리가 채택한 이 표준에 의하여 조용기 목사의 성경관, 삼위일체관, 기독론, 복음,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을 연구해본 결과 조용기씨의 설교와 신학은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사도적 보편교회의 신앙과 일치하면서도, 우리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지적한 문제점들은 대체로 오순절 교파의 특수성에 관련된 것들이 많고, 또한 조용기씨 자신의 오류도 부분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조용기씨가 1984년 본 총회에 제출한 '서신'과 1994년 본 총회 총회장에게 보내온 '서신' 에서 그 자신이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고, '잘못된 점을 수정해 나갈 것' 이라고 전해 왔으니, 우리는 상호간에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의 구성원들로서 이 민족의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받아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라고 총회에 보고했다.
이로써 조용기 목사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기독교사상 최초로 이단사이비로 정죄되었다가 해제되는 사례를 남겼다. 그러나 통합측 총회는 이로써 처음부터 한국교회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조 목사에 대한 정치적 이단 시비를 했음을 시인한 꼴이 되었다. 왜냐면 통합측 스스로 자신들이 사이비 신앙운동이라고 “지적한 문제점들은 대체로 오순절 교파의 특수성에 관련된 것들” 이라고 시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단이나 사이비 문제는 신학적, 신앙적 문제인데 어떻게 사과' 로 풀릴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이런 논리를 적용한다면 여타 이단 문제도 대상자들로부터 '사과' 를 받고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총회 후에 통합측 사이비이단대책위원으로 활동하던 최삼경 목사는 조 목사에 대한 사이비 해제에 불만을 품고 “조 목사의 신학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총회는 이단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이단으로 본다”며 교단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사실 1983년 통합측의 사이비 결의 이전이나 1994년 해제 때나 조 목사의 신학과 신앙이 크게 달라진 것이라곤 없었다. 그렇다면 통합측 총회가 처음부터 이단이나 사이비로 볼 수 없는 조 목사의 신학과 신앙을 억지로 트집 잡아 순전히 교권의 힘으로 사이비로 매도한 것이라는 지적이 가능한 일이다.
■ 필자의 평가
장로교 통합측 교단으로부터 '양도둑' 으로 몰려 사이비로 매도되었던 조용기 목사 사건은 한국교회 대교단의 교권주의와 교파의 신학적 경직성이 얼마나 무섭게 자리 잡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당시 조 목사는 조상제사 문제와 치병안수 문제, 성령론 등이 장로교의 그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이비로 정죄 받았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장로교 중심의 기독교의 통일성만 강조되었지, 각 교파에 따른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개혁교회의 신학과 실천원칙을 무시한 것이다.
조 목사의 설교가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는 요한3서 1장 2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삼박자 축복을 강조하는 것은 현세적, 기복적 신앙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순복음중앙교회가 가지고 있던 독특한 교인층의 구성과 신앙실천으로 이해해야 함이 옳다. 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조 목사에 대한 사이비 결의 해제로 섣불리 남의 신앙체험을 비난하거나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어야 했음에도, 통합측과 합동측을 비롯한 대교단 교권집단의 횡포는 그 후에도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