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기독교대표 5인( 감리교 양주삼, 김종우, 성결교 이명직, 장로교 홍택기 김길창)이 신사참배를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신문은 ‘완전한 일본주의적 기독교인으로 이세신궁, 명치신궁, 정국신사 등 일본 내지 신사들을 순례하고 참배하였다’라고 보도했다.(매일신보 1938.12.13.)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우상숭배’하는 ‘숭배자파(cult) 이단’
예장합동측 총회이단사이비피해대책위원회가 제시한 이단 정의에 따르면 ‘이단은 문자 그대로, 다르거나 틀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로서, 사도들이 세운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거짓 교리를 주장하는 무리들이다....이단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이단(heresy), 종파(sect), 분파(schism), 숭배자파(cult) 등이 구분 없이 많이 사용된다. ...’숭배자파‘는 우상숭배나 이방신과 기독교를 혼합한 숭배나 예배형식을 갖춘 집단이다.’(기독교정통과 이단 무엇이 다른가? p84)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기독교 정통 신앙의 요점으로 ‘정통기독교는 성경을 기록된 유일하고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도의 삶과 행위에 대해 최고 권위를 가진 근거라고 믿는다....정통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한다. - 요점: 하나님은 한분이시니 오직 주만 경배해야한다.’(기독교정통과 이단 무엇이 다른가? p18) 고 성경의 말씀대로 오직 한분 오직 주만 경배하라고 밝히고 있다. 즉 기독교인이 우상숭배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또 주일학교 아이들도 알고 지키는 십계명에는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다.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당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 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 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성경에 기록된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하였다면 명백한 이단이다.
한국교회 대표적 3대 정통교단 이라하면 장로교. 감리회, 성결교 등이다. 이들 교단 모두가 일제의 신사참배를 공적으로 결의하고 신사참배를 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박해와 순교를 당한 목사와 성도들을 뒤로 한 채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교단들이 공적으로 우상숭배로 배교행위를 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진짜 이단원조는 바로 이들이며, 거대한 이단공동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교단들은 무수한 많은 사람과 집단을 이단으로 정죄해 왔다. 정작 그들이 정죄한 이단 중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신사참배와 같은 우상숭배를 한 극악한 이단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짝퉁 이단? 도 들어있다.
타인을 이단 규정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은 순서 일 것이다. 물론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처럼 불가능 할 것이다.
∎소위 정통교단의 ‘신사참배’
▴장로교임원이 평양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신사참배란 일본 국교인 신도(神道)의 사당 즉 천황신을 모신 신사(神社)에게 절하는 것이다. 천황을 절대신(神)으로 섬기는 신도(神道) 사당인 ‘신사’나 ‘신궁’에는 천황가의 조상신이나 신화적 인물과 영웅 등을 안치해 놓았다. 말하자면 귀신 우상숭배인 것이다.
장로교는 1938년 2월, 평북노회가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닌 '국가 의식'임을 인정한다는 결의를 했고, 같은 해 6월에는 전북노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그해 9월 장로교는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가 아니며 일본의 신민(臣民)된 의무로 행하는 의식일 뿐이라고 발표했다.
9월 9일 오후 8시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개최된 장로교 제27회 총회(총회장 홍택기)가 다음날 9월10일 오전 10시 50분 이미 조작된 각본대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홍택기 총회장은 ‘신사참배는 종교 의식이 아닌 국민의례이므로 교회가 참여해도 좋다'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날 12시엔 부총회장 김길창 목사의 인솔로 평양신사참배에 이르렀고 그후 동경 신사를 참배했다. 이듬해 6월엔 간사 유호준 목사의 인솔로 총회임원과 지도급 핵심인사들이 부여로 신궁 근로동원에 솔선수범했다.
한편, 감리회는 장로교 보다 먼저 신사참배에 동조했다. 감리교 선교사들과 캐나다선교부에서 운영하는 학교들은 1930년대 초반에는 저항했지만 중반이 지나면서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 받아들였다. 공식적으로는 1938년 10월5일부터 냉천동 감리교신학교 강당에서 양주삼 총리사의 사회로 기독교 조선감리회 제3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제3회 조선감리회 총회는 셋째날 오후 1시반 총회원들은 총독부의 지시에 따라 배재중학교 운동장에서 일장기 계양식이 참례 후 황거요배(皇居遙拜),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한 후 총독부로 가서 미나미 총독의 고사(告辭)를 들었고 남산 조선신궁을 참배 했다. 이후 10월 12일 김종우 목사가 조선인 최초의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김종우 감독은 1939년 8월 장로교, 성결교 교단 지도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신사참배를 했다.
감리회 총회는 자신들의 ‘신사참배’를 변명하기를 ‘장로교는 교회당에서 총회를 개최한 후 회무를 통해 정식 결의 했던 점에 비해 감리교회는 총독부측에 의해 각본대로 총회원 모두가 동원되고 타의로 강행되었다’고 한다.
이밖에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도 신사참배에 모두 동조했다. 반면에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안식교는 교회 지도자와 가족 대부분이 신사참배를 피해 산속 깊이 도피하며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고 한다.
∎ ‘동방예배’와 ‘불교세례’, ‘천조대신보다 더 높은 신은 없다’ 고백한 목사들
기독교인들은 예배 시간이라도 정오 사이렌이 울리면 일왕이 사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하는 '동방요배'를 했다. 교회마다 이동식 신사인 '가미다나'가 설치됐고 교인들은 일본 귀신을 향해 절을 했다. 이는 일왕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였다.
▴동방요배하는 사람들
기독교 목사들은 서울의 한강, 부산의 송도에서 일본 중이 일본귀신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집례하는 '미소기 바라이'라는 '신도침례'를 받았다. '신도침례'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천조대신보다 더 높은 신은 없다.'고 고백한 사람에게 행한다. 조선의 교회는 '천조대신이 높으냐? 여호와 하나님이 높으냐?' 하는 질문에 '천조대신이 더 높다'라고 하는 문구에 서명해서 조선 총독부에 제출했던 것이다.
목사들이 일본 중들이 행하던 불교 세례 즉, 불교에서 물을 뿌려 세례를 주는 '미소기 바라이'라는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 미소기 바라이는 강과 바다 등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졌는데, 한국 교회 목사들은 일본 불교 중들에 의해 행해진 이 예식을 행했다. 말하자면 이교도 세례를 받은 것이다.
▴사진 ‘미소기 바라이’
당시 신문 보도 자료에 의하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이 모두 신사참배에 동참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시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는 악의 세력에 대항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지 않았다. 악한 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일컬으면서 병기구입을 위해 헌금을 바치고 교회당을 팔아 그 돈을 바쳤다. 일제 조상신을 향하여 절을 했고, 일본 귀신을 예배했다. 우상숭배를 한 것이다. 성경을 편집하고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왕중왕 되심을 부정하는 따위의 배교를 저질렀다. 당시 한국교회지도자들은 일제의 황민화정책에 협조하고 신사참배를 통해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요구에 순응하고 야합한 죄를 참회하지 않은 채, 공적인 참회고백이나 자숙 없이 광복 후에도 교권을 쥐고 한국교회를 계속 주도해왔다. 절대다수의 한국교인들은 우상숭배를 행하던 자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들 교단이야 말로 이단의 원조인 것이다.
∎신사참배 거부자에 한국교회 앞장서 징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해 모든 교역자들이 순응한 것은 아니었다. 더러는 총독부 당국자를 찾아가 청원운동’을 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굴복한 교회를 비판하면서 순교를 각오하고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펴기도 했다. 주요인물로는 평남의 주기철, 평북의 이기선, 경남의 한상동· 주남선, 전남의 손양원, 함남의 이계실 등이며, 만주 지역에서는 박의흠· 김형락 · 김윤섭 등이 활약하였다.
▴신사참배 순교자
일제는 이들을 치안유지법·보안법·불경죄 등을 적용하여 중죄인으로 다뤘는데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투옥된 이는 대략 2천여 명에 달했고, 주기철 목사 등 순교자만도 50여 명에 달했다. 이밖에 교회 2백여 곳이 폐쇄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우상숭배를 신자들에게 강요했다. 거부하는 교역자들의 목회직을 박탈했고 면직, 제명 시켰다. 충성스런 그리스도의 제자들, 동역자들을 왜경에 고발하고 끌려가게 했다.
1938년 장로회 제27회 총회가 신사참배 결의 당시 “회장, 항의합니다.” 하고 외치다가 일경에 끌려간 한국 출생의 미국선교사 ‘한부선’ 그는 만주지역을 돌보고 복음을 전한 선교사이다. 그가 속한 봉천노회는 총회가 결정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를 제명해 버렸다. 한부선은 투옥되어 고생하다가 포로교환 일원으로 아프리카를 거쳐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순천중앙교회는 신사참배거부로 옥살이를 하고 있던 황두연 장로를 장기결석이유로 시무장로에서 제명했다.
1939년 12월 19일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는 신사참배 결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기철 목사를 목사직에서 파면했다. 주기철 목사는 1944년 복역중 고문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옥사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많은 목사들과 장로, 평신도들이 교회에서 축출 당하고 제명을 당한 사건이 비일비재 했다. 해방이후 이들은 복권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행정적 조
▪정작 교단들은 신사참배 공적 참회 없었다.
신사참배와 불교세례를 받았던 정통교단들은 정작 공적 회개가 없었다.
한국교회의 과거사에 대한 회개는 한경직 목사로 부터 비롯되었다. 영락교회 한경직(1902~2000) 목사는 1992년 6월 18일 템플턴상 수상 축하행사 때 인사말을 통해 "반세기 전에 지은 신사참배의 죄를 참회한다."고 회개한 바 있다. 또 2006년에는 소장파 목회자들이 결성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한 일과 독재정권 시절에 권력층과 야합해 정의를 뒤엎기도 한 죄악에 대해 마음을 찢으며 참회한다” 내용의 반성문을 발표한 바 있다.
교단 차원에서는 2006년 1월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교단 중 처음으로 교단의 친일 행적을 사죄했다. 이어 2007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가 3·1절을 기념해 신사참배 행위에 대한 죄책고백 선언문을 발표했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같은 해 9월 총회 때 신사참배 행위를 사과했다. 또 2009년 예장 합동과 통합, 기장, 합신 등 4개 장로교단은 교단 분열 60년 만에 처음 제주 연합예배로 모여 신사참배 참회기도를 드린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소수 지도자들이 모여 생색내기 행사를 한 것에 불과하다.
개신교단 중 가장 먼저 신사참배를 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시 교단차원의 참 회개는 아직도 없다. 다만 서울연회(감독 김영현)가 2013년 4월 5일 은평교회에서 열린 ‘제33회 연회’ 둘째날 회무에서 역사적인 ‘신사참배 회개 결의 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이 고작이다.
진정한 참회와 회개를 하려면 모든 장로교단이 총회에서 신사참배 회개 결의문을 채택하고 참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이들 교단은 자신들이 만든 이단 규정에 따르면 이단인 셈이다.
∎맺는 말
우상숭배를 한 교단을 진짜 이단으로 정죄한 아직 한곳도 없다. 대부분의 교단이 이 족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통교단이라 자랑하는 이면에 이단의 역사적 전통을 지닌 해당 교단 목회자와 성도들은 심기가 불편하겠지만 반드시 청산해야할 문제이다.
우상숭배를 감행한 ‘극악한 이단’의 꼬리표를 잘라내야 미래가 있다.
이단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교단의 공적인 사죄가 있어야 하며 공회 앞에서나 언론 매체를 통한 공적인 고백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참회와 반성 없이 한국교회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말 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과거 신사참배와 같은 행위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
교권을 위해서라면 신앙양심도 팔아 버리는 교권우상주의, 절과 점집이 들어서는 것은 눈감고 교회가 들어서면 방해하고, 교인 이동하니 전도하지 말라며 동료 목사를 누명 씌워 목사 면직시키는 내교회 우상주의, 카톨릭과 교회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컬운동은 오늘날의 신사참배 아닌가?
부디 한국교회가 과거를 청산하고 개혁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에 매진할 것을 기대해 본다./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