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려 하지 않는 섣부른 이단판단이나 각인전쟁에서 고지를 점령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단정죄는 제6계명과 제9계명 위반이다”-본문 중에서
정보전달 방식의 촉매적 혁신 시대, 유비쿼터스 시대의 폐단 가운데 하나는 근거 없는 주장이 거침없이 대중에서 대량 전달되는 점이다.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와 제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범한다. 정보의 정확성과 의미와 윤리적 책임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한다. 책임성 없는 말, 편향되거나 왜곡된 지식, 정확하지 않은 단편적 정보가 난무한다. 그 틈새에서 억울하게 매도되고 매장되고 ‘왕따’ 당하는 피해자들이 늘어난다.
이단성을 지닌 자들이나 이단 집단들의 배타적 독선적 정죄의식과 발언들도 위 계명들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다. 자파 외의 사람들을 향하여 “지옥 간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다. 저급한 언어, 몰상식, 흑백논리, 증오심 따위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교회와 선량한 기독인들을 매도하고 저주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대교리문답 제136문답은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를 명예훼손, 그릇된 분노, 증오심, 질투, 과도한 격분 등 생명을 파멸하는 것들과 관련시킨다.
제 6계명이 금지하는 죄들은 무엇입니까? 제 6계명이 금지하는 죄들은… 죄악된 분노, 증오심, 질투, 복수심, 모든 과도한 격분, …격동시키는 말과 압박, 다툼, 구타, 상해와 다른 무엇이든지 사람들의 생명을 파멸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대교리문답 제144문답은 제9계명을 해설하면서,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지키기 위해 성급히 정죄하지 말고 나쁜 소문은 쉽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친다. “제9계명이 요구하는 의무는 무엇입니까?” 라고 묻고 아래와 같이 답한다.
제9계명이 요구하는 의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과 우리 이웃의 명성을 우리 자신의 것과 같이 보존하고 […] 우리의 이웃을 사랑으로 평가하며 그들의 명성을 사랑하며 소원하고 기뻐하며 그들의 연약을 슬퍼하고 덮어주며, 그들의 은사와 은혜를 기꺼이 인정하고 그들의 결백을 변호하며 그들에 관한 좋은 소문을 쾌히 받아들이고, 나쁜 소문을 시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고자질하는 자, 아첨하는 자, 중상하는 자들의 기를 꺾고, 우리들 자신의 명성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필요할 때에는 이를 옹호하며, 합법적 약속을 지키며, 무엇이든지 참되고, 정직하고 사랑스럽고, 좋은 소문을 연구하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12문답도 동일한 맥락에서 제9계명을 해설한다. “제9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성급히 정죄하지 않으며 […]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고 높여야 합니다.”
타인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려 하지 않는 섣부른 이단판단이나 각인전쟁에서 고지를 점령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단정죄는 제6계명과 제9계명 위반이다. 이단정죄에 열성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중세교회는 자기 존재의 바탕인 위 계명들을 위반하는 모순을 연출했다. 교회는 이단자가 소유한 재산을 몰수했다. 재산의 절반은 이단자를 고발한 사람에게 주고, 나머지는 종교재판소가 가졌다. 집행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질 실리를 얻으려고 무고한 자를 억지로 이단자로 만들었다. 밀고자의 신원을 비밀에 붙여주었다. 종교재판은 반대 증인이나 전문가의 반대심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심문 기록의 열람도 허용하지 않았다. 앞선 심리에 대한 정보 취득의 길을 차단했다. 전술했듯이 고발인과 재판관이 동일인인 경우도 있었다. 항소는 불가능하거나 헛일이었다. 이단 재판의 목적은 진실 규명이 아니었다. 이권 때문이거나 로마교회의 교권과 교리 그리고 기득권에 굴복시킬 목적이었다. 한국교회의 이단정죄에는 이와 같은 면이 없는가?
양심적인 자기반성은 기독인과 그리스도의 연합을 돈독히 한다. 정당한 이단심문은 사랑의 원칙 안에서 이루어진다. 정당한 심문은 이단판별을 하려는 목적이 순수하다. 정의로운 교회는 각인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이단정죄를 남발하지 않는다. 자파 세력보호나 자기 집단의 권위에 굴복시키려는 의도를 버린다. 교회가 잘못을 범할 수 있고, 오류를 범해 온 사실을 인정한다. 이단재심제도를 거쳐 억울함을 풀어주거나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위로한다. 계도(啓導) 목적으로 대화를 한다.
그리스도께서 강조한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교회는 성경과 성경적 진리성에 충실한 이단심의를 한다. 이단 혐의자가 복음사랑, 진리사랑, 교회사랑 과정에서 생긴 실수와 잘못을 고치겠다고 약속하고 성경과 진리성에 충실한 가르침을 따를 경우에는 품고 함께 간다. 진리 안에서 접근방식과 상호이해와 표현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최덕성 교수
∎학력·경력 : 예일대학교 (S.T.M.) 에모리대학교 (Ph.D.)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 (1997-1998) 고려신학대학원 고신대학교 교수 (1989-2009)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2010-현재) 브니엘신학교 총장 (2013-현재)
∎저서·역서
『교황신드롬: 로마가톨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KOREAN CHRISTIANITY 『쌍두마차시대』 『종교개혁전야』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 『정통신학과 경건』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바르멘신학선언과 장로교인 일본』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 『양심선언과 역사의식』 『개혁주의 신학의 활력』 『개혁신학과 창의적 목회』 『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쓰기』 『개혁주의 전통』(역) 『개혁주의 전통의 정신』(역) 『신학적 해석학』(역) 『소교리문답강해』(역)
∎수상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신학자대상 수상 (2001)
[/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