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약의여정( Covenant Journey)
∎생각 및 포럼
나는 전통있는 영국의 청교도 가문에서 태어났다. 나의 선조는 하바드대를 설립한 분 중의 한 분으로 우리 가문은 학문과 신앙에 명망이 있었다. 그러나 부유하지는 않았다. 나는 미국 뉴욕 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눈이 아팠다. 시골이라 병원도 없어서 멀리서 의사를 데려와서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가 눈을 잘못 치료했다. 나는 결국 생후 6개월 만에 맹인이 되었다. 대도시로 가서 눈을 뜨게 하는 치료를 받고 싶었으나 너무 가난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생후 1년 만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엄마가 도시에 나가 일해서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다. 다행스럽게 나는 11살까지 할머니 손에서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인생 스토리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로 잘 알려진 크로스비(Frances Jane van Alstyne, 1820 – 1915 ) 여사는 시인, 작사가 및 작곡가인 미국의 선교사이다. 미국 태생의 세계 최고의 맹인 찬양 전도자이자 찬송 시인이다. 미국인이 뽑은 미국 대통령보다 더 존경하는 금세기 최고의 인물이며, 한국인이 뽑은 가장 은혜로운 베스트 찬송가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의사의 미숙한 처치로 시력을 잃고 일평생 맹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크로스비는 육안은 멀었지만 영안이 열려 역사상 가장 많은 찬송가를 작사한 음악가 중 한 명으로 9,000곡 이상의 찬송시와 복음성가를 저술했다. 그녀는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 1억권 이상이나 인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로스비는 ‘찬송가의 여왕’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현대 집회 찬송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미국 찬송가에는 그녀의 저작곡이 수록되어있다. 크로스비의 가장 잘 알려진 노래 중 일부는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나의 갈길 다가도록(All the way my Savior leads me)”, “나의 영원하신 기업(Thou, my everlasting portion)”,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A wonderful Savior is Jesus my Lord)” 등 한국 찬송가에도 가장 많은 23곡이 수록되어있다.
출생 직후 맹인이 되다
크로스비 여사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 주 남동부 조그만 시골 푸트남에서 태어났다.그녀의 아버지는 존 크로스비이며 엄마는 머시 크로스비이다. 크로스비 가문은 영국에서 건너온 전통있는 청교도 집안이었다. 크로스비라는 말이 ‘십자가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닐 정도로 그녀의 집안은 믿음의 명문 가문이었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하바드 대학교의 설립자 중의 하나이며, 오랜 세월 동안 믿음의 선조들을 자랑하는 매우 신앙심 깊은 가문이었다. 그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믿음과 학문에 열정이 있던 가문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믿음의 가문에서 따뜻한 어느 봄날 패니는 부모님의 기도로 태어났다. 부모는 막 태어난 아기를 안고 기뻐하며 감사했다. 아기는 유난히 울음소리도 컸고 웃기도 했다. 존과 머시는 아기 패니 를 믿음 안에서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생후 한 달 정도가 된 4월의 어느 아침, 어머니인 머시 크로스비는 막 태어난 아기의 눈에 고름 같은 것이 끼어 있는 것을 알았다. 아기의 눈은 충혈됐고 눈꼽같은 것이 끼고 염증이 생긴 듯했다. 아기는 감기까지 걸려 낮과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보채며 울어댔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한 머시는 의사를 부르도록 했다.
당시 아기 패니가 태어난 곳은 아주 작은마을인 시골이었다. 병원도 의사도 없었다. 이 소식을 듣고 머시 크로스비의 오빠 조셉이 말 뒤에 의사라고 하는 낯선 사람을 데려왔다. 이 의사는 그동안 많은 사람을 잘 진료했다고 자랑까지 하였다. 의사는 아기 패니의 눈을 보더니 검은 가방에서 이상한 병과 도구들을 꺼냈다. 그리곤 이상한 병에 약물을 섞더니 아기의 눈에 지독한 냄새의 점액제를 떨어뜨렸다. 의사는 겨자습포제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기는 작은 팔과 다리를 심하게 요동치면서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머시 크로스비는 무언가 잘못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의사는 처음엔 다 이렇게 운다고 하면서 하루 이틀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남기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그렇게 심하게 울던 아기가 덜 울고 또 잠도 자는 듯해서 눈이 낫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기의 검은 눈동자는 거의 사라져가고 흰색만 남았다. 아기의 눈은 부모님의 모습과 움직이는 손을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 결국 아기 패니는 6주 만에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었다. 패니의 엄마 머시 크로스비는 어린 딸이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통곡하며 울었다. 패니가 돌팔이 의사의 실수로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교회와 동네 사람들은 그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 그를 처벌하여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을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요? 주님을 잘 믿고 있는 우리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머시 크로스비는 울면서 기도했다. “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길러야 하지 않겠소?” 라며 남편은 아내를 위로했다. 크로스비 가문은 믿음과 학문은 뛰어났으나 매우 가난한 집안이었다. 특히 아버지 존 크로스비에 이르러 더욱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패니는 눈이 멀게 된 이후로도 제대로 의사의 치료를 받아 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패니가 생후 1년이 되었을 때 그를 극진히 사랑하던 아버지 존 크로스비 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에 아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2. 크로스비의 CVDIP 리더십
∎COVENANT: “영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혼을 울리는 찬송 시인”
할머니의 성경 말씀 교육
패니의 엄마는 늘 생활고로 바빴기 때문에 패니는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할머니 유니스 크로스비는 패니의 어린 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할머니는 손과 발이 되어주었고 패니의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었으며, 특히 성경 말씀 교사였다.
패니는 할머니에게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힘, 부드러움을 배웠다. 할머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패니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설명해 주면서 성경 말씀과 접목시켰다. 패니의 할머니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가르치며 손으로 만져 보고 코에 대고 향긋한 향기를 맡도록 했다. 그리고 그 꽃의 색깔과 향기, 생김새 등을 일러주었다. 패니가 그 이름을 잘 익힐 수 있도록 자세히 묘사했다.
할머니는 모든 자연을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설명해 주었으며, 패니가 성경 말씀을 암송하도록 지도하는 훌륭한 성경교사 였다. 심지어 무지개의 아름다운 일곱 빛깔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그 오묘한 모양을 전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 동물들과 식물들, 바람 소리와 물소리와 해와 달과 별, 그야말로 온 우주와 모든 만물이 할머니의 교육 재료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으로 기록된 성경에 관한 얘기로 연결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위인들의 이야기와 이적과 기사들, 이런 것들이 패니의 마음속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는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 ‘하나님이 패니와 함께(WITH) 하신다’는 것에 소녀는 안도했다. 무엇보다도 ‘패니의 엄청난 장애와 고난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알기 쉽게 자연을 예로 들면서 그리고 패니가 온몸으로 느끼도록 각인시키고 뿌리 내리게 하였다. 할머니의 말씀 각인은 패니의 다른 오감과 상상력을 비장애인 이상으로 키워 주었다. 어린 소녀 패니는 육안(肉眼)은 비록 닫혔지만 영안(靈眼)이 대신 열리고 있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이 그녀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에 각인된 성경 말씀은 패니의 오감(五感)을 자극하여 남보다 뛰어난 영감(Inspiration)과 감수성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훗날에 그녀가 여류 시인이 되어 찬양시를 짓고 찬송가 가사를 작시하는데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패니에게는 별다른 교육 시설도 없고 딱히 가르쳐 줄 선생님이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패니에게는 그 어떤 교육보다도 뛰어난 개인 과외교사 할머니의 특별한 교육이 있었다. 할머니는 매우 지혜롭게도 주위에 펼쳐진 자연 및 우주 만물을 믿음의 가문에 대를 이어 내려오는 성경 말씀에 접목하여 교육하였다. 이러한 교육방법은 그 어떤 현대 교육 시스템으로도 제공할 수 없는 매우 값지고 효과적인 조기 교육이었다. 신앙과 자연에 대한 사랑은 패니의 일생을 통해 다양한 재능으로 표출되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찬양시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갔다.
패니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시편과 잠언, 룻기 등과 신약의 대부분을 암송했다. 패니의 할머니는 성경 뿐 아니라 문학작품도 많이 읽어 주었는데 패니는 거의 외울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할머니는 패니에게 무엇보다도 자신감과 자존감을 심어 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일리어드를 지은 호머(Homer)와 실낙원(Paradise Lost)을 지은 존 밀턴 (John Milton)도 역시 맹인이었음을 알려 주면서 절대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패니가 초기에 쓴 시의 대부분은 할머니가 가르쳐 준 성경으로부터 받은 주제로 이루어졌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험’, ‘야곱과 요셉의 만남’, ‘삼손과 블레셋’ 등이었다. 성경은 그녀의 시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았다.
“오 성경책이여, 난 경외함으로 경배하네, 각 구절마다 얼마나 큰 기쁨을 보는지! 루비보다 더 내게 소중한, 내 어린 시절 신앙의 책이여!”
이처럼 패니는 평생 성경에 대한 사랑을 잃은 적이 없었다. 그녀가 맹인임에도 그리고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들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 말씀이 각인되고 뿌리내렸고 체질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아기 때부터 말씀 교육이 중요하다. 모세가 당대 최강국 애굽의 왕자로 있으면서도 히브리 민족임을 잊지 않고 출애굽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요게벳의 말씀 교육 때문이었다.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을 듣고 암송해오던 어느 날 문득 소녀 패니는 자신이 맹인이 된 것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맹인을 비롯하여 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정상인들도 방황하는 것을 보았다. 특히 교회에 잘나가는 기독교 신자들도 대부분 방황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장애로 인해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는 일에 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 하나님 제게 말씀을 주셔서 저의 영안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비록 저는 육안은 잃었지만 제 ‘영안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많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찬송 시인’이 되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어린 맹인 소녀 패니 크로스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Covenant)이 되었다.
∎ VISION: “영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혼을 울리는 찬송 시인”
맹인 소녀의 기도
그러나 패니는 앞을 볼 수 없었고 더구나 돈이 없어서 막막하고 답답했다. 이대로 앞을 전혀 보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그때마다 그녀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나와서 그녀가 기도하는 큰 바위로 가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패니에게 위로를 주었고 새로운 용기와 소망을 주었다.
그렇지만 패니가 11살 되었을 때 패니를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할머니 유니스 크로스비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향방이 또한 달라질 수 있음을 여기서 볼 수 있다. 패니는 가난과 슬픔과 장애에 버려진 불행한 아이였다. 그러나 패니 크로스비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개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생후 1년 만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생계가 어려워 엄마가 일을 해서 먹고 살아가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과 교육이 부족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적합한 할머니를 준비하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소천하신 후에는 패니가 가는 곳마다 준비된 사람들을 붙여 주셨다. 하나님은 지식의 배고픔으로 늘 허기진 어린 영혼의 긴긴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곧 현실로 그 길을 열어주셨다.
그 안타까움이 배움의 기쁨으로 바뀌어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배움의 갈증은 그녀로 하여금 밤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하였다. 나중에 그녀가 시를 지을 때면 골방에 가서 먼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습관은 이때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9살의 어린 나이에 크로스비는 "하나님 저는 소경이지만 저의 머리와 저의 손을 사용하여 주옵소서”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말씀과 기도는 크로스비의 잠자는 달란트를 깨웠다. 패니가 기도할수록 할머니에게 배운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특히 어릴 때부터 암송했던 성경 말씀은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혼을 울리는 찬송시를 만드는 재능으로 발전하게 하였다. 크로스비(Crosby) 십자가(Cross) 가문답게 그녀에겐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십자가 보혈의 찬양을 많이 작시했다. 다음은 그녀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에 감격하여 지은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찬송시이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당하셨네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Jesus shed His blood for me, Before our salvation,
On His cross, the agony of a lost creation
Jesus, Lord, Jesus, Lord, For my sins they slew Thee(You),
Now by Thy(Your) dear blood restored, Drew the siner to Thee(You)
리듬과 멜로디를 고려하여 한글 번역을 하였기에 원뜻이 다소 감소 된 느낌이다. 크로스비의 고백은 조금 다르다. 필자가 번역해보면, “예수 나를 위하여 그의 보혈의 피를 쏟으셨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창조를 잃어버릴 정도의 고초를 겪으셨네. …(중략) 이제 주님의 사랑스런 십자가 보혈의 피로 나를 회복시켜 주소서. 이 죄인을 주님께로 가까이 이끌어 주옵소서”의 의미이다. 이렇듯 그녀는 십자가 보혈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을 찬송했다. 찬송가 439장 ‘십자가로 가까이(Jesus, keep me near the Cross)’도 마찬가지다. 후렴에 반복되는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In the Cross, In the Cross, Be my glory ever)”도 영어 원문을 보면 “십자가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나의 최고의 영광의 삶이 이루어지네”에 가까운 뜻이다. 성경 말씀과 기도는 예수님이 패니 크로스비의 구세주 되시며 놀라운 능력이 되심을 알게 하였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오 하나님 저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저는 육안은 잃었지만 제 ‘영안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찬송 시인’이 되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어린 맹인 소녀 패니 크로스비에게 주시는 비전(Vision)이 되었다.
신본주의 문학
크로스비가 태어나고 활동하던 182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는 미국에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문학이 태동하고 꽃피던 시기였다. 또한 노예문제로 미 대륙이 남북전쟁에 휘말리는 시기였다. 1783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자, 미국인들은 이 정치적 독립에 걸맞은 지적, 정신적 독립을 점차 원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미국 문학 창조의 욕구도 이에 따라 활성화되었다.
크로스비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 문학(1865-1914)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작가인 트웨인(Mark Twain; 1835 - 1910)은 미국 동부 해안에서 떨어진 미주리주 경계에서 태어난 미국인 작가로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토지를 무대로 하는 그의 책 자서전 《미시시피의 삶》(Life on the Mississippi)과 소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다. 이것이 미국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의 등장인물은 방언과 신조어 및 지역의 억양까지 사용하여 실제 사람처럼 말하도록 하여 사실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로 영안이 열려 영감이 살아난 크로스비에게는 낭만주의 문학도 초월주의 문학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들은 인간의 어두운 흑암 세계와 물질 중심 사회를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문학은 하나님의 창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크로스비는 인본주의가 아닌 신본주의 문학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미국인들 가슴에 하나님을 심어주리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많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문학을 해야겠다는 언약은 점차 비전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11살 때에 그토록 사랑하던 할머님이 돌아가시고 항상 배움에 목말라 하던 패니가 14살이 되던 해 패니에게 신본주의 문학의 기틀을 닦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834년에 뉴욕 입법부와 맨해튼에 새로 생긴 맹인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집했는데 여기에 패니는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뉴욕주 맹인학교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하게 된 패니는 그야말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은 듯 지식에 대한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하면서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크로스비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샘솟는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패니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 할수록 지혜는 영감으로 샘솟았다.
크로스비는 당대에 미국을 풍미하고 있는 낭만주의와 초월주의 그리고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 문학 기풍을 믿음의 눈으로 뛰어넘으려 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어둡고 사악한 심연을 드러냈지만 크로스비는 그들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심연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크로스비는 기도했다. “하나님 제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며, 특히 어둠에 잡혀있는 영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울릴 수 있는 찬송시를 쓸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세요!” 그때부터 크로스비는 결심했다. 인본주의가 아닌 신본주의의 시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그녀는 일평생 동안 하나님을 영화롭게 찬양하고 영혼을 울리는 주옥과 같은 찬송시를 많이 작사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찬송시인은 크로스비의 언약(Covenant)을 넘어 비전(Vision)이 되고 있었다.
∎ DREAM : “영혼을 울리는 찬송과 간증으로 복음을 전하는 찬양 전도자”
콜레라 전염병
1846년 후반부터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는 콜레라 전염병이 러시아와 페르시아와 인도로 퍼지고 있었다. 이미 수만명이 죽었고, 이듬해 영국으로 퍼져 7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국도 안심할 수 없었다. 1849년 5월과 6월 사이 콜레라는 뉴욕에서만 80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크로스비가 교사로 있는 맹인학교도 초비상이 걸렸다.
콜레라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크로스비의 품에서도 벌써 몇 명의 어린이가 죽어 나갔다. 패니는 죽어가는 어린 소녀를 끌어안고 기도와 위로를 하면서 통곡하였다. 병원마다 콜레라 환자들로 가득 찼고 매일 통로에 작은 관이 수북하게 쌓였다. 크로스비가 사는 도시에서도 매주 500명이 죽어 나갔다. 크로스비가 존경의 표시로 시를 헌정한 포크 전 대통령도 어젯밤에 죽었다고 한다.
크로스비는 매우 놀랐고 슬펐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도 잘 써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만 깊은 슬픔과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기도와 찬송도 잘되지 않았다. 그녀는 몇 달 동안 이 엄청난 사실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 저녁이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콜레라도 차츰 진정돼 가고 있었다. 그녀는 콜레라로 인하여 깊은 생각과 많은 체험을 했다.
“만일 콜레라가 지금 나에게 덮쳐서 내 생명을 빼앗아 간다면, 지금 나는 하나님 만 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도 다른 동료들처럼 죽을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서 남겨두신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맹인 소녀 시인’으로 잘나간다고 한들 죽음 앞에서 이런 명예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환점(Turning Point)
이런 회의와 번민과 생각에 빠져있을 때 패니는 테오드르 캠프 목사가 이끄는 부흥집회에 참석했다. 끔찍한 콜레라로 인하여 많은 떼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부흥회로 모여들었다. 크로스비도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신비한 곡조가 흘러나와 번민하던 그녀의 영혼을 깨웠다. 패니는 눈물을 흘리며 “오, 주님!”을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찬송가 143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Alas! and did my Savior bleed)’찬양이 그녀의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害) 받으셨나?”
(“Alas! and did my Savior bleed, And did my Sovereign die? Would He devote that sacred head For such a worm as I?”)
“아! 이럴 수가! 나의 구세주 예수께서 나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니,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며 인류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나의 절대 주권자가 죽으셨다니 이게 웬 말인가? 주님께서 이 벌레 같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그 성스러운 머리를 깨뜨려 헌신하셨다니 이게 웬 말인가?”
오 주님이시군요, 저를 콜레라로부터 지키시고 날 위해 피흘려 돌아가신 분이 주님이셨군요,… 난 그동안 이런 나의 주권자이신 주님을 잊고 있었어. 아니 나는 한 손에는 주님을 잡은 척하면서 다른 한 손에는 세상을 잡고 있었어. 세상 명예를 쫒고 있었어. ‘맹인 여류 시인’으로 이름을 떨치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어.…” 이런 생각이 비오듯 쏟아지면서 패니는 자신의 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느꼈다. 심장은 고동쳤고, 폭포수 같은 눈물과 콧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하고 있었다. 성령께서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를 깨우시고 일으키셨다. 찬송은 계속 이어졌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그렇다. 콜레라가 할퀴고 간 상흔으로 인하여 내가 번민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도 주님은 날 위하여 피흘리고 계셨구나 단 한순간도 나를 놓지 않고 계셨던 거야”
부흥회에서 뜨거운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후 크로스비는 달라졌다. 맹인 여류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보다 죽어가는 저 영혼들을 살리는 게 더 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크로스비는 새롭게 결단했다. 언제 콜레라가 와서 죽을지 모르는 영혼들에게 내가 만난 주님을 간증하고 찬양하여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자. 이것이 날 위해 피 흘리시고 돌아가신 주님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크로스비에게는 새로운 사명이자 꿈이 생겼다. “영혼을 울리는 찬송과 간증으로 복음을 전하는 찬양 전도자”가 되리라는 생생하고도 분명한 꿈(Dream)이 그녀의 가슴속에 새롭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님! 이 꿈을 위해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나를 받으소서!” 이제 크로스비는 성령과 보혈의 피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녀는 기도하면서 주체할 수 없어서 입을 열어 주님을 찬양했다.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 ” 훗날 찬송가 288장(구 204장)은 이렇게 해서 쓰여 졌다.
∎IMAGE: “영혼을 울리는 찬송과 간증으로 복음을 전하는 찬양 전도자”
간증과 찬양의 전도 사역
성령과 피로 거듭난 크로스비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그녀는 평범하게 안락의자에 앉아 뜨개질이나 하면서 가끔씩 찬송시를 짓는 옛틀의 그녀가 아니었다. 크로스비는 당대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 무디와 함께 온 미국을 순회했다. 자신의 찬양과 간증을 담대하게 전했다. 크로스비의 찬양과 간증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에서 비롯되고 그녀의 생생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다 보니 많은 사람의 영혼을 울렸다. 가는 곳 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크로스비는 어느덧 찬양과 간증으로 복음을 전하는 찬양 전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자신과 같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을 그녀의 간증 및 찬송으로 전도했다. 항상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을 손수 돌보는데 열심을 냈다.
그녀가 찬양 전도자의 삶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매우 활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그녀는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인, 소설가, 작가 뿐 아니라 정치인, 경제인, 대통령,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 거리의 사람들 등 그들과 교류하면서 더욱 충만한 열정을 보였다. 특히 그녀의 찬양시에 곡을 붙여 주었던 소중한 동역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찬송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만들어 준 미국음악의 개척자 로웰 메이슨, 크로스비의 서정시가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던 조지 루트,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에서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어 준 윌리엄 브래드베리, 실베스터 메인, 로버트 로우리 박사, 윌리엄 하워드, 무디와 생키 등 그녀에게는 소중한 동역자들이 있었다. 그녀는 16대 링컨대통령을 위시해서 24대 그루버 클리브랜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9세기를 통치한 십여 명의 미국 대통령들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크로스비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충만한 은혜를 경험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그녀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영혼을 울리는 승화된 찬송가 작사자로
찬양 전도자로 전국을 순회하다 보니 그녀에게는 새로운 경험들이 생겼다. 그녀는 이런 체험들을 찬송시로 연결했다. 그녀의 찬양곡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의 애창곡으로 불려지고 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찬송가 279장)와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찬송가 417장)는 당시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찬송으로 뽑혔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찬송가 608장)는 미국인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찬송으로 뽑혔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크로스비의 찬송에 은혜를 받았고 주님 앞으로 나온 사람들의 간증이 줄을 이어 소개되면서 그녀는 오히려 대통령보다도 더 많은 영향력을 미국 국민에게 끼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크로스비는 전 생애를 통해 무려 12,000곡 정도의 찬양시를 발표했는데 출판사에서는 시 한편에 고작 1달러에서 2달러 정도만을 지급했기 때문에 그녀의 생활은 항상 가난한 형편을 면치 못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어려운 이웃들을 살피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첫 번째 찬양곡집을 출판하여 모은 얼마 안 되는 돈도 기꺼이 자선 단체에 기부하였다. 한 번은 집세를 못 내어 쫒겨 날 위기에서 한참 기도하는 중에 낯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10달러를 놓고 가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하는 간증도 있다. 항상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크로스비에게 하나님께서 도움의 천사를 보내 주신 것이었다.
결혼과 가정
패니와 밴 부부는 다시 뉴욕의 맨하튼으로 이사를 갔다. 패니 크로스비는 다시 모든 열정을 다 쏟아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 곳 저 곳에서 찬송시를 써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6, 7편의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곡에 붙일 가사를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들은 부부이자 서로를 돕는 배필로 행복하게 살았다. 패니와 밴은 많은 일을 했지만 허름한 집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가난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불평하거나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주신 것에 항상 감사를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도 아내를 떠나 먼저 하늘로 갔다.
∎PRACTICE: “영혼을 울리는 찬송과 간증으로 복음을 전하는 찬양 전도자”
처음 눈 뜨는 날 예수님 얼굴 보기 원해
어떤 사람이 크로스비에게 이렇게 질문 겸 말을 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참으로 많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해서 당신의 두 눈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때 크로스비는 힘주어 낮게 대답했다.
“만약에 내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 한 가지 부탁을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과 같이 소경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다음에 저 영화로운 하늘나라에 가서 뵙게 될 주님의 얼굴이 이 세상에서 제가 제일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찬양 전도자 패니 크로스비』(가진수 지음, 아이러브처치)에서 패니 크로스비 여사의 삶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① 그녀는 매우 부지런한 일꾼이었다. 뜨개질로 목욕수건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했고, 시간이 나는 대로 성경을 암송했으며 골방에서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② 그녀는 모든 면에서 기억력이 매우 뛰어났다. 자신이 원하는 시를 언제라도 암송할 수 있었고, 예배드릴 때 찬송가를 모두 외웠는데 악보를 보는 사람보다도 더 정확하게 불렀으며 성경의 장 절을 정확하게 외웠다.
③ 그녀는 철저하게 남을 위해 산 사람이었다. 부자이기보다는 부유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서 평생 가재도구가 거의 없었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얼마되지 않는 재산도 모두 기부했다.
④ 그녀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슬퍼하거나 후회하거나 불평하는 말을 평생 하지 않았으며 그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알게 되어 매우 행복합니다”라는 인사를 했다. 그의 기쁨은 전염성이 있었다 한다.
⑤ 그녀는 놀라운 영적 평안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가는 곳마다 불쌍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로하고 도왔으며 하나님께서 그녀와 함께 하시므로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졌다고 한다.
세 명의 천사와 동행한 삶
크로스비는 94세가 되는 10월의 어느 목요일 저녁에도 한 교회에서 지난 90년의 세월을 증거하는 집회를 열고 말씀을 전했다. 교회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강대상에는 많은 꽃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여사는 장미꽃을 만지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했다.
"나에게는 평생의 삶을 통해 세 사람의 천사가 동행했습니다. 첫 번째 천사는 내 입맛을 감시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다” 저는 항상 천사의 말을 순종했고 대신 신선한 달걀과 과일, 야채, 어린 닭고기 그리고 차 한잔을 좋아했습니다. 두 번째 천사는 제 기분을 감시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하고 웃음거리로 만들 때마다 나는 언제나 빨리 잊어버리려 애썼고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세 번째 천사는 제 입술을 감시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세요. 내 입술을 주장하시고 입술의 문을 지켜 주세요.” 그리고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시 34:12-14)
예배가 끝난 후 여사는 수백명의 사람들과 악수한 후 집으로 가서 차 한잔을 마신 후에 방에 들어가 하루의 삶을 감사하며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후 4개월이 지난 다음 해 2월의 어느 날, 딸을 잃고 슬픔에 잠긴 친구에게 편지 한 통을 대필하여 작성하게 한 후에 크로스비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패니 크로스비의 죽음을 알리는 조전이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한평생 찬양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던 한 맹인 여류 시인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그녀가 애창하던 찬송가처럼 하늘나라에서 마침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크로스비는 95세까지 살면서 무려 9000곡 이상의 찬송가를 작사하였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 더이상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도 원망보다 감사함으로 마무리되었다. 크로스비는 “측량 못할 은혜로 채우시며 늘 성령의 감화주사 큰 기쁨 중 주님을 찬양토록 내 생활을 도우시네.”(찬 391장 3절) 라는 그녀가 지은 찬송을 조용히 읊조리면서 하나님께로 올라갔다. 육안은 비록 안 보였지만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안이 열려서 수많은 영혼을 전도한 찬양 전도자의 위대한 모습이었다. 95세의 일기로 치러진 그녀의 장례식에서 주례자는 디모데후서 4:7-8을 인용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주실 것이니.”
크로스비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하늘에서 처음으로 눈을 뜨고 그녀가 가장 사랑하고 사모하던 그녀의 구세주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인생작품
크로스비는 비록 육신의 눈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감사하고 누리면서 영혼을 울리는 수많은 찬송시를 남겼다. 그리고 그 찬양과 간증으로 복음을 전하는 찬양전도자라는 언약의 여정을 걸었다. 크로스비가 작시한 찬양이 우리 찬송가에 가장 많은 무려 스물 두 편이나 들어가 있다. 다음은 그녀가 CVDIP 리더십을 성취하면서 남긴 인생작품이다.
[다음호: 언더우드 선교사 ]
세계복음화 협회 세계군선교연합회 회장
렘넌트 신학연구원(RTS) 왜래교수(2022년도 2학기~)
강서대학교 국제교육교류원 초빙교수
육군사관학교 졸업, 대령 전역
전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전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주요저서
세상의 틀을 바꾸는 CVDIP 리더십(2019)
나를 바꾸는 리더십(2019)
영화로 본 리더십(2018)
현대 북한 이해 (제1판~4판; 201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