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연 홈피(http://ikccah.org/1469) 게시판에 실린바 다락방과 류광수 목사를 양태론자로 단정한 이인규의 주장은 외박눈이 원숭이가 온전하게 두 눈을 가진 원숭이를 놀리는 격이다. 이인규와 함께 이단 연구를 하고 있는 최삼경이 삼신론적 입장과 마리아 월경 잉태설을 주장하면서 몇몇 목회자를 이단으로 만들어낸 억지를 그 또한 어리석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인규가 류 목사를 삼위일체 교리에 있어서 양태론(양태론적 단일신론)으로 단정하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이인규에 의하면, 다락방에서 말하는 ‘영접’은 양태론적 주장과 이단적 기독론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즉, 성부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영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류 목사가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억지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같은 억지 결론에 근거하여 다락방과 류 목사를 양태론 이단으로 단정하고 있다.
이인규가 말하고자 하는 바,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이단 사상인 양태론에 의하면, 예를 들어 어떤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집에서는 아버지로, 교회에서는 장로로, 회사에서는 부장으로 얼굴과 역할을 바꾸어 나타나는 것이나, 또는 물이 영도 이하에서는 얼음으로, 상온에서는 물로, 백도 이상에서는 증기로 나타나는 것처럼, 한 분 하나님이 창조와 율법 수여에서는 성부로, 성육신에서는 성자로, 중생과 성화에서는 성령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인다고 주장한다(참고, 뻘콮,「기독교신학개론」신복윤 역, p. 72-73). 이 양태론에 의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시에 함께 존재하거나 활동하거나 상호 교제(또는, 교통) 할 수가 없다. 즉, 성부가 존재하고 활동하는 경우에는 성자와 성령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양태론에 의하면, 성도들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할 수가 없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시에 함께 교회나 성도 안에 거하실 수가 없다.
이인규에 의하면, 다락방의 류광수 목사의 경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위격이 구별되지 않고 동일하여서 사실상 성부 하나님만이 존재하고 있는 까닭에, 성부 하나님 자신이 직접 성육신하고, 성부 하나님이 성도 안에 거하시고 있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어 양태론적 이단이라고 억지 주장한다. 류 목사의 ‘영접’도 “성부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뜻한다고 억지로 단정한다.
이인규의 이같은 억지 단정과는 달리, 우리 다락방과 류 목사가 가르치는 바 ‘영접’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우리 안에 거하게 하는 믿음의 행위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성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열리고, 성령 하나님이 또한 우리 안에 임하여 거하게 되는 바, 이것이 구원이요, 임마누엘의 축복임을 성경대로 다락방과 류 목사는 가르치는 것이다(참고, 요 14:16, 26-27).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시기 때문에 흑암의 세력이 성도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참고, 류광수 「복음편지」pp.76-77).
‘영접’의 용어상의 의미에 있어서도, 다락방과 류 목사가 의미하는 바는 믿음 자체일 뿐, 믿음의 고백 이후의 재영접을 뜻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복음인 것을 알지 못하거나,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는 초보적 단계의 신자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신자의 경우 예수님을 확실하게 제대로 믿을 것을 강권하는 경우 ‘영접하라’는 말을 쓰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목사님들이 일반적으로 성도들을 향하여 ‘성령으로 거듭나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라’고 강조하는 경우와도 같은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다락방과 류 목사가 가르치는 바 ‘영접’은 양태론과 전혀 관계가 없고, 재 영접설도 결코 아니다. 이인규가 다락방과 류 목사가 사용하는 ‘영접’이라는 용어를 곡해하여, 성육신과 성령의 내주와 성부 하나님의 임재를 구별하지 아니함으로 삼위의 구별을 알지 못하는 양태론으로 단정한 것은 터무니없는 억지이다. 류 목사는 응답 받는 기도에 대하여 가르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만 보아도 류 목사는 양태론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참고, 「복음편지」pp.104-105).
둘째, 류 목사가 말하는 바, ‘영접’과 관련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비밀’ 또는 ‘구원의 비밀’이라고 한 것을 두고 이인규는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삼위일체는 비밀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인규의 이같은 주장은 그 자체가 비성경적이요, 신학적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 세상에 그 무엇으로도 유추할 수 없는 신비요 비밀이다(참고, 박형룡, 「교의신학」제 2권 신론, pp. 186, 209). 또한 예수님의 성육신도 비밀이다(골 1:27; 2:9 참고 「교의신학」제 4권 기독론, p.132).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고 하는 복음도 비밀이요(롬 16:25; 갈 1:11-12; 고전 2:2),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성자 예수 그리스도 뿐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여 내주하심(임마누엘)도 구원의 비밀이다(참고, 박형룡 「교의신학」제 5권 구원론, pp. 102-105). 이로 보건대, 삼위일체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비밀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이인규의 억지 주장이 오히려 비성경적이요, 이단적이다.
셋째, 예수님의 성육신과 관련하여, 다락방과 류 목사가 말하는 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고 한 것을 두고 이인규는 양태론적 이단으로 정죄한다. 성육신과 관련하여 류 목사가 말하는 것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있는 까닭에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류광수, 「복음편지」p.44). 더욱이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다(같은책, p72). 인간은 자신의 힘이나 노력으로는 하나님을 만나거나 깨닫거나 할 수 없으며 구원 받을 수도 없다. 이에 영이신 성자 하나님께서(고전 15:45; 고후 3:17-18) 인간을 만나 주시고 구원 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같은 책, pp73-74; 참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 7장 3항).
이로 보건대,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 류 목사가 뜻하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존하는 하나님(autotheos)으로서 영이신 성자 하나님이 직접 (또는 친히)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이다. 성자 예수님의 경우 부활 이후에야 영으로 존재하게 되신 것이 아니고, 자존하는 하나님이시기에 처음부터 영이심을 류 목사는 삼위일체론적으로 알고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말하고 있다(참고, 칼빈 「기독교 강요 」Ⅰ권 13장 7, 8절; Ⅱ권 13장 4절).
또한, 이인규는 성육신과 관련하여 “그 영은 하나님인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식으로 류 목사가 표현한 것으로 주장했다. 이로써 4세기 이단적 기독론자인 아폴리나리우스(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몸은 인간의 육과 혼에 신적 영인 로고스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영이 없다고 함)와 관련지어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이나 몸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해석하여 류 목사를 이단적 기독론으로 단정한다. 앞에서 거듭 밝힌대로, 류 목사의 의도한 바는 영이신 성자 예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말한 것뿐이다. 류 목사의 말한 바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구원 받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에 영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를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성육신이라고 합니다”(요 1:14) (「복음편지」p.73). 그리고 이어서 또 말하기를 “복음은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 그 분은 죄가 없으시며, 그 영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5:45). 사람을 건지셔야 하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복음편지」p.74). 이인규는 「복음편지」가운데서 “그 영은 하나님이시다”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표현을 앞뒤를 바꾸어 악의적으로 연결하여 문장을 만들어 가지고 류 목사를 이단적 기독론자로 단정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에 관한 류 목사의 가르침은 아폴리나리우스의 기독론과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아폴리나리우스가 말하는 영은 인간의 몸의 구성 요소를 가리킨 데 반하여, 류 목사가 말하는 “그 영”은 영이신 하나님(요 4:24), 곧 성자 예수님의 신적 본질을 가리켜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로교회 목사로서 신학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자이면 대체적으로 양태론이나 아폴리나리우스의 이단성을 알고 있기에 그 같은 이단적 주장을 가르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다락방과 류 목사를 이단적 삼위일체론인 양태론적 단일신론(양태론)이나 아폴리나리우스의 이단적 기독론과 관련지어 이단으로 단정하려 한 이인규의 주장은 악한 의도와 무지에서 비롯된 억지이다.
글/ 나용화 박사( 조직신학,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