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문화 예술의 힘 자랑

복음에 뿌리가 없는 문화 예술은 공허할 뿐

2012-11-07 01:20:19  인쇄하기


문화의 힘이 세다.
팔로우어 오십만을 자랑하는 어떤 문인은 강원도 산골에 묻혀 살지만, 정치권의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문안 인사를 드리고 인증샷 찍기에 열을 올린다.  
문화와 버무려진 정치적 야심, 대중의 입맛과 소수의 권위에 편승한 문화의 힘을 바라보는 심정이 다소 혼란스럽다. 어디 그 뿐인가. 문화의 힘이 정치와 사회를 리드한다.

청소년의 정서를 망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던 싸이의 야한 노래들은 세계 굴지의 방송에서 대한민국을 알렸다는 이유로 열화같은 여론에 밀려 금지곡에서 공식적으로 풀려났을 뿐 아니라,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까지 받았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정서는 메말라가는 것 같은데 문화의 힘은 강력해진다.

인생을 좀 살아 본 사람들은 안다.
전에는 나름대로 문화 예술 안에 인간 심성의 깊이와 품위와 성찰이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요즘은 빠르게 달리고 얄팍하게 내뱉고 쌈빡하게 튄다. 그래서 문화 예술 주도자들은 어떻게든 쉽게 변하는 대중들의 입맛에 신속히 맞추려 든다. 그런데 이렇듯 가벼운 문화 사회적 경향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영적인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신중하게 나아가야 할 현대 교회의 딜레마이다.

▲김서권목사/ 세게복음화신문 제공

예를 들면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아류를 도입한다든지, 성경은 제쳐두고 영화 스토리로 설교를 한다든지, 연예인 초청 집회나 상담 심리 프로젝트를 활용한다든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말하자면 교회의 문턱을 낮춰보자는 몸부림인데 그러다가 자칫 교회 안에서 영성은 희미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버무려져서 감히 문화가 진리를 압도할까 조심스럽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문화 예술적 내용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그 구체적 방법론과 실제적 내용에 있어서는 오락가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권 개혁을 놓고 깊이 기도하는 목회자로서 오늘날의 교회가 문화 예술의 방향과 성향을 주도하는 연금술사들, 대중의 말초신경을 어떻게 자극할 것인지 완전 통달한 그들의 전문성 앞에서 지루하고 고루하고 짜증나는 교회로 전락해 버리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야말로 우선 눈에 보이는 것에 기죽고, 힘 떨어지고, 팔을 늘어뜨리는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현장에서 만나는 문화 예술인들의 삶, 그리고 목사로서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는 깊은 기도 후에 깨달았다.

문화 예술이 대중에게 말하고자 하는 진리는 다양하고 복잡하고 때로는 화려하지만 핵심이 빠져있다.
반면에 성경적 진리는 단순하고 쉽고 단호하고 알차다. 다시 말해서, 복음에 뿌리를 두지 못한 문화 예술은 명실공히 공허하여 그 문화 속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삶은 심히 고독하고 우울하고 쓸쓸하다는 것을 전도 현장에서 확인했다는 말이다. 부초처럼 뿌리가 없으면 꽃도 없고 열매도 없지만 다양하고 기름진 문화 예술적 뿌리, 즉 전문성이 있으면 반드시 꽃은 피게 되어있다.

  그러나 복음 없는 문화의 꽃은 열매가 없다. 열매는 사람이고 생명이고 힘이고 평화이며 사랑이다.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던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듯이 오늘날 문화 예술인들의 말로는 대부분 화려한 조명 뒤에 불 꺼진 객석의 정적만큼이나 어둡고 고독하고 우울하다.

  따라서 오늘날의 교회는 이럴 때일수록 가인의 후예들이 만들어 내는 타락 문화, 그래서 결국 개인의 재앙을 불러오는 흑암 문화를 막는 강력한 복음 문화로 무장되어야 한다. 절대로 사회적 통념에 버무려지지 않는 진리, 예수 그리스도만이 답이 된다는 진리의 깃발을 세우고 있으면 꽃은 피웠는데 열매가 없는 인생으로 전락한 문화 예술인들이 찾아온다. 한 사람, 문화예술계의 유력한 한 사람이 복음으로 힘을 얻으면 이것이 곧 문화 개혁이다.
/김서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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