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전도사화(傳道士禍)(2) 합동 부산노회 전도방해와 이단조작

한국교회 최초 전도사화를 촉발시킨 원인 제공자는 합동 부산노회

2022-11-26 06:21:01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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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서 일어난 다락방전도운동 참여자들에 대해 합동, 통합, 고신을 비롯한 주요 교단이 수백명의 목사에게 전도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제명, 면직 출교 등을 책벌했다. 목사에게 제명이나 면직은 사형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한국교회 최초의 전도사화(傳道士禍)’이다.

이는 한국교회 100여 년 역사상 신사참배 이후 가장 수치스럽고 뼈아픈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합동 부산노회가 류광수 목사에 대한 이단조작음모를 통한 면직처분에서 비롯됐다.

30여년 전 류광수 목사가 이끄는 다락방전도운동은 부산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류광수 목사가 시무하던 동삼제일교회는 급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교인 이동으로 불만을 품은 합동 부산노회 목사들이 음모하여 류광수 목사를 고발하고 노회로 하여금 이단 누명을 씌워 면직 처분했다. 그럼에도 당시 다락방 전도운동은 부산을 넘어 전국으로 급속 확산되며 전국 각지에서 한국교회 거의 모든 교단에서 1만여 명 목회자들과 수많은 평신도들이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여해 전도훈련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각 교단들은 합동 부산노회의 이단 조작음모를 마치 사실인양 받아들이고 이를 인용하여 다락방 전도운동 확산을 막고자 수 백명의 목사들을 제명, 면직 처분했다.

당시 합동측 부산노회가 자행한 류광수 목사에 대한 이단조작 음모 실태를 들여다 보고자한다. 

합동 부산노회의 전도방해

당시 류광수 목사가 담임한 동삼제일교회는 부산지역 전역에서 활발한 전도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19914월 봄 정기노회가 시작되기 직전에 부산노회가 동삼제일교회 앞으로 전도활동 중단 요구서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이 배경에는 동삼제일교회와 이웃한 동삼중앙교회 박근필 목사의 고발이 있었다. 노회고발 이전에 어느 날 박 목사가 자기 교인이 거기로 옮겨가니 목회 윤리상 주의 했으면 좋겠다.”는 항의를 류광수 목사에게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류 목사는 그 많은 교인 중에 누가 어디서 왔는지를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동삼제일교회의 급성장과 더불어 부산노회소속 교회들의 불만도 높아 갔다. 이유는 교인들이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웃 교회들이 류 목사의 전도열정을 이해하기 보다는 비난하고 비판하며 류 목사에 대한 성토 수위를 높여갔다. 이유는 성도들이 옮겨간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류광수 목사와 그 교회를 죽여야 한다.’ 는 것이었다. 소위 김창수, 홍성립, 박근필, 손기현, 김정태 등등 7인방으로 불리어지는 예장 합동 부산노회 목사들이 부산의 남태평양호텔에 모여 류광수 목사를 매장 시키자는 계획을 세웠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부산노회의 공문서에는 전도지역을 제한하고 부산지역의 전도활동을 중단할 뿐 아니라 전도지 배부 등을 중지하라는 요구였다. 이로 인해 동삼제일교회 성도들은 교회 옆에 절간이 들어서는 것은 반대도 못하면서 목사들이 전도를 하지 말라니 노회에 대한 감정도 악화되기 시작했다. ‘전도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로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단교회 건물 봤다고 이단 고무찬양죄로 고발돼

이윽고 같은 해 412일 봄 정기 부산노회(당시 노회장 황양호 목사)에서 홍성립 목사(소망교회, 다음해 급성간경화로 57세에 소천)가 노회에 류 목사 사건을 제소하였다. 제소내용이 이단인 마산 산해원교회를 방문했으므로 이단관련죄’, 그 교회가 많이 모이고 열심인 것을 칭찬했기 때문에 이단고무찬양죄’, 라는 죄목이었다.

정기노회에서는 류광수 목사에게 변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류목사의 해명을 들어야 한다는 한 회원의 제의가 계속되자 3분 동안만 설명하라는 허락이 내려졌다. 류광수 목사는 89년도에 산해원교회(당시 이태화 목사)에 가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교회가 너무 협소해 이전해야할 필요가 있어서 건축을 고려중이었는데 그때 소문에 마산의 산해원교회가 산 아래 넓은 땅에 조립식 건물을 잘 지었다고 하길 래 건축위원들과 함께 그 교회를 견학했다.”고 설명했다. 류 목사는 이단교회를 방문한 것을 인정하고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그 교회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류목사의 해명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OO목사가 귀엣말로 류 목사, 산해원교회와 관련되었다고 시인하고 용서만 빌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네, 류 목사 자네가 너무 고집이 세고 교만하기 때문에 일이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고 한다.(이 목사도 작고했다). 사실 몇 분 목사님은 노회의 처사가 너무 심하다고 말하면서도 평소 류 목사가 노회원들과 대화가 부족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각본대로 재판 판결

정기노회가 잠시 휴회된 사이에 정치부가 모임이 이어졌다. 류 목사는 정치부에 호출당해 심문을 받았다.

무슨 돈으로 이런 전도활동을 하느냐

모든 전도활동과 조직을 폐지하라

예약된 모든 집회를 취소하라

왜 남의 동네 와서 전도하느냐

우리가 너의 하수인이냐?’

그렇게 잘 났느냐?’

수많은 질문과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속회된 노회재판 결과는 이미 각본대로였다. 

재판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산해원교회 방문을 했기 때문에 이단 관련죄그 교회를 보고 부흥했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단고무찬양죄그 결과 동삼제일교회당회장직 박탈등이었다. 부산노회는 류광수 목사에 대해 모든 전도활동 중지하라는 선고를 1991412일 내렸다. 

전도활동 일체 금지징계와 탈퇴선언

부산노회의 전도활동 중지 선고에도 불구하고 날로 확산되는 다락방 전도운동과 동삼제일교회의 초고속 부흥은 주변의 교회 입장에서는 축하의 대상이 아닌 시샘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매우 위협적으로 느꼈는지 이윽고 부산노회는 19911014일 제133차 가을 정기 부산노회를 개최하고 류광수 목사 안건을 다시 다루었다.

가을노회는 봄 노회에서 다루었던 것에 한 발 더 나아가 이단연루설을 추가하였다. 내용인즉 베뢰아 김기동과의 연관설을 추가한 것이다. 부산노회의 이단조작음모가 극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부산노회는 이에 대한 처리를 두고 투표를 실시 한 결과 당회장권 1년 박탈, 1년 근신, 1년간 대회 일체금지, 기 조직된 사조직 해체 등을 결정하였다.이 당시 노회의 결정을 보면 언어도단이다. 이단이 분명하면 무조건 면직하거나 제명해야지 투표한 일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말인즉 전도할동을 확실하게 못하도록 본때를 보여주자는 식이었던 것이다.

부산노회 탈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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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 성명서(교회복음신문 19911118(10)) 

그러나 동삼제일교회 성도들과 류광수 목사는 부산노회의 징계를 수용할 수 없는 조치로 보고 1024일 노회탈퇴 성명서를 발표했다. 동삼제일교회는 탈퇴성명서를 통해 부산노회의 징계 에 유감을 표명하고 징계 부당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첫째, 전도지역 제한에 대한 반박이었다.

부산노회는 전도지역을 제한하고 기존 전도활동을 못하게 하였다. 주일 저녁마다 전 교인들이 흩어져 전도하는 부산역. 용두산공원에서의 전도활동을 금지시키고 100여 군데 다락방과 13군데 선교관을 전면 폐쇄하라고 명령하고, 류광수 목사의 개 교회 집회활동을 금지시키고 교회주변 지역에서만 전도하게 한 것은 사도행전 18, 마태복음 2818-20절 등 성경에 위배된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둘째, 비성경적 방법으로 징계를 내린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133차 부산노회에서 류광수 목사에 대한 징계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한 번도 이번 문제에 대하여 사전에 권면이나 진의를 공식적으로 조사하지 않았고 단 몇 시간 만에 모든 사건을 처리 한 것이다. 

셋째, 변론이나 소명의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공식석상에서 변론할 기회를 주자는 노회원의 동의가 있었음에도 이것을 묵살하고 단 7-10분 정도의 시간을 제한하여 말하게 하고 모든 사건을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넷째, 아전인수식으로 설교내용을 왜곡한 것이다.

류광수 목사의 설교 테이프 중 문제로 지적한 부분만 가지고 전체의 내용과는 정반대 해석을 하였고 이단의 근거가 사실상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추측만으로 이단에게 교육받았으며 이단과 내약이 있었고 그 방법을 가르치고 또 내용을 교인 집회 때 가르쳤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본인이 이 사실을 강력히 부인함에도 위 사실을 시인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다섯째, 베뢰아 집단의 위험성을 강조했음에도 오히려 교류했다는 허위주장 반박

류광수 목사의 집회 테이프 내용 중 베뢰아 집단의 위험을 강조하고 이단집단에 참여하는 것을 강력히 금지시킨 내용이 있을 뿐 아니라, 베뢰아 이단에 빠진 성도를 도리어 회개 시켜 건전한 개혁주의 신앙으로 인도한 사실이 있음에도 전혀 근거 없는 이단과의 교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로 류광수 목사와 동삼제일교회 성도들은 분개하였고 이는 류광수 목사가 집회한 50여 건전한 개혁주의 교회와 10여 선교단체를 모욕하고 심히 불명예스럽게 하였으므로 그 징계 자체는 부당하다고 간주하고, 류광수 목사와 동삼제일교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 부산노회를 19911024일 노회탈퇴를 공고하였다.

 

■ 이단조작과 면직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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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문에 공고된 목사면직공고

류광수 목사가 부산노회의 부당한 징계를 거부하고 탈퇴성명을 발표하자 부산노회는 이미 탈퇴하여 부산노회 회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판국장 노회장 손훈달, 재판국 서기 김창수의 명의로 면직처분을 내렸다. 

19911126일 부산노회는 제133회 제1차 임시노회를 은광교회에서 개최하고 '류광수씨는 상회불신불욕 이단사상 전파 등 비리를 자행하여 왔기에 본 노회 제133회 본회의에서 1년간 당회당직 정지 및 대회활동1년 간 금지 등 관용치리로 각성을 촉구하였으나 본 노회의 치리를 거부하고 탈퇴하였으므로 목사면직 처분하였다'라고 하였다. 무려 14가지 항목의 죄목을 달아 면직처분을 하였다. 

부산노회는 1. 류광수씨는 목사의 기본자세가 되어 있지 못한 자라며

5년전 목사 안수시 노회 행정상에 물의를 일으킨 자 / 2년 전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자/ 노회불참 등 상회불신태도를 취해온 자

2. 이단집단인 세칭 김기동파의 귀신론 사상을 배워 주장하는 자

김기동 신학사상 보급의 근거지인 베뢰아아카데미를 수료한 자

경남노회에서 면직당한 산해원교회(이태화씨)를 다섯 차례 이상 찾아다니며 그의 지도를 받아 그 방법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자

교회 중직자들을 산해원교회에 견학 또는 훈련을 받게 한 일이 있음.

산해원교회의 세력확장 방법을 실천하기 위하여 부산에 13개 선교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100여개의 다락방 운영계획을 세워 성경을 가르친다는 미명아래 기성교회와 교인을 미혹하고 목사를 집중 공격하는 일에 목표를 두고 있는 일.

3. 베뢰아 사상을 고무 찬양 선전하는 자

이단으로 처벌된 교회(산해원)는 성령의 역사와 방법을 깨닫는데 보수파들은 왜 성령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렇다면 이단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한자

성경을 모르면 귀신 들린 신학자이고 영을 모르는 목사는 무당보다 못하다는 등 베뢰아의 상투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자

한국교회는 풍랑을 만났고 98%가 마귀에게 사로 잡혔고 90%이상 이 싸우고 갈라져 세워졌다고 하면서 교회를 왜곡 부정 비방한 자.

4. 기성교회와 목사는 부패하였다고 교인과 목사를 이간한자

기성교회 성도들은 수년간 교회를 다녀도 구원의 확신이 없고 자신들의 다락방에 와야 구원의 확신을 얻어 새 삶을 얻는다고 하여 기성교회들을 비방하고 성도들을 미혹한 일

목사 설교에 은혜 되지 않으면 은혜 되는 교회로 옮기라고 주장하여 목사와 성도간의 관계를 이간시킨 일

기성교회에서 행하는 전도주일 총동원주일, 전도폭발, 제직회 당회 노회 심방까지 잘못된 것으로 주장, 단지 다락방 운동만 하면 교회가 할 일을 다 하는 것으로 간주 한 일

해외파송 선교사(필리핀1,000)들은 다 모여서 먹고 놀며 선교비만 탕진하고 있는 자들로 매도한 일. (이상은 1991년 초 OOO교회 전도세미나 녹음테이프에 수록된 것 임) 등 이었다. 

∎류광수 목사의 면직처분에 대한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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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224일 자로 발표된 해명서

류광수 목사는 면직처분 한 달 뒤인 1224일 교계신문에 해명서를 발표하였다. 내용은 부산노회가 면직처분사유로 정한 각 항목에 대한 반박 해명이었다. 류 목사는 4가지 내용으로 해명서를 발표하였다. 

첫째, 노회관계문제를 언급하며 노회의 원칙을 어긴 적이 없고, 노회를 탈퇴한 것은 징계내용이 본인의 신앙양심상 사실과 전혀 다른 것으로 부득불 취한 결정이며 

둘째, 이단집단인 김기동파와의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김기동의 베뢰아 아카데미를 수료하거나 어떠한 연관도 없다. 또한 산해원교회(이태화)의 지도를 받은 적이 없으며 도리어 이단에서 성도를 보호할 목적으로 산해원 교회를 조사했으며 성도들을 훈련, 견학의 목적으로 보낸적이 없다고 밝혔다. 

셋째, 본인의 전도방법은 본인이 15년 전부터 하고 있는 전도방법으로서 이단과는 관련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넷째, 이단 사상 고무 찬양문제에 대해서는 이단들도 공단과 학교에 열심히 파고들고 있는데 교회가 더욱 열심히 전도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이단사상을 고무 찬양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밝혔다.또 성경을 모르면 사단의 이용을 당하며, 목회자가 무당보다도 사단을 대적할 힘이 못하면 안 되며, 사단과 무당과 우상에 빠진 자를 생명 다해 건질 책임이 있다는 본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는 소위 베뢰아 사상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또 한국교회 대부분이 전도하기보다 싸우며 싸움은 마귀의 상투적인 수단이라고 말하면서 교회가 전도할 것을 강조 하였는데 이는 교회의 현실을 염려하여 한 말이라고 밝혔다. 

다섯째, 기성교회에 관한 언급문제에 대하여는 기성교회 구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이 없어 청년들과 학생들의 여러 이단들에 넘어가고 있으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할 것을 강조하였다고 했다. 

또 설교나 세미나에서 목사와 성도간의 관계를 이간시키는 의도로 발언한 적이 없으며 혹 표현의 과격함에 오해하였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고 밝혔다.

또 기성교회의 전도방법을 잘못된 것이라 발표한 적이 없이 없으며 이 또한 표현에 무리가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또 기성교회의 제직회, 당회. 노회, 심방을 부정한 적 없으며 다만, 전도에 관심 없는 모임들을 지적 하였을 뿐 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전도실천을 강조하던 중에 선교사의 큰 고생함과 열매 없음을 지적한 것이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용서를 빈다고 했다. 

면직처분 과연 정당했나?

부산노회의 면직처분사유는 앞으로 전개되는 다락방전도운동에 두고두고 장애가 되었다. 면직이 불법이던 적법이던 합동교단은 류광수 목사 개인보다 부산노회의 결정을 무조건 지지했다는 측면에서 악재중의 악재가 되었다. 다락방 전도운동이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각 교단들도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면서 부산노회 면직사유를 각 교단이 확대 적용하며 다락방을 이단으로 만드는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국기독일보는 당시 부산노회 면직처분 절차적 과정을 살펴보고 그 정당성 여부를 확인 추적했다. 무려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시 증인들을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당시에 드러난 몇 가지 사실과 정황들을 살펴보니 부산노회 면직처분 내용은 이단음모 조작이었음이 드러났다. 

전도활동금지목적의 징계는 교회의 본질을 망각한 것으로 노회의 징계는 정당성이 없다.

교인이 이동한다는 이유로 전도활동을 금지한 노회의 조치는 무엇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교인이 타교회로 이동한다는 자체가 목사의 입장으로선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교인이 절에 간다고 절에 항의하는 목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성도가 목회자의 소유물로 인식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전도를 하지 말라고 막는 것은 결코 노회가 할 결정은 아니었다고 본다. 또 계속 전도를 하자 이를 막겠다고 이단의 굴레를 씌운 자체는 초대교회 당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행한 못된 짓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 무시하고 부관참시

면직 사유 중에 음주교통사고 건은 면직결정 수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당시 노회에서 3개월 근신 처분을 내리고 용서한 사건이었다. 이를 다시 끄집어내어 면직사유로 삼은 자체가 유치한 발상 일 뿐 아니라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난 것이다. 이는 마치 중세 종교재판에서 무덤에서 시신을 파내어 다시 정죄하는 것과 같이 매우 악의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이미 용서한자를 다시 죄인으로 만든 것으로 목사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아주 정치적인 것이었다.

또한 당시 사건도 살짝 스쳐 지나간 아주 경미한 사건으로 쌍방이 합의한 사건이었다.

공정한 조사, 소명기회 없이 면직결정

법정에서도 최종 선고 전에 반드시 피고에게 최후 진술기회를 부여한다. 부산노회는 류목사의 진술할 소명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면직처분했다. 부산노회가 제시한 면직사유 중 산해원교회 관련해서는 해당 교회를 방문해서 조사 확인한 사실도 없고, 베뢰아 김귀동 관련설 역시 베뢰아 측에 대하여 사실여부를 조사한 적도 없이 주장한 하였고, 설교 테잎 내용을 근거로 제시한 것 역시 말꼬리 잡기식으로, 반드시 당사자의 소명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것이다.

탈퇴한 자에게 면직처분 자체가 불법

탈퇴하면 이미 노회회원이 아니다. 탈퇴 회원에 대해서는 제명을 했어야 옳은 것이다. 그럼에도 합동총회는 면직처분은 정당했다고 부산노회의 편을 들었다. 면직을 하려면 징계결의를 할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면직을 했어야 옳다. 부산노회가 주장한대로 류광수 목사가 이단관련자라면 징계가 아닌 면직처분을 했어야 옳다. 그럼에도 징계처분을 한 것을 관용이라고 주장한 것은 모두 이단에 동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에 면직처분을 하지 않고 징계를 한 자체가 계속 말 안 들으면 이단 만들겠다는 협박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면죄처분을 통해 이단으로 만든 것이다.

부산노회의 이단조작음모

면직사유중 핵심이 이단관련설이다. 이중 하나는 산해원교회(이태화 목사) 관련설이고, 또 하나는 베뢰아 김기동 관련설이었다. 이것을 처음 제기한 자는 홍성립 목사이다. 그는 류광수 목사의 설교 테잎을 듣고 마치 류 광수 목사가 산해원교회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제소했다.

산해원교회(이태화 목사)199141회기 고신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이후 이태화 목사는 합동측에 의해 1994년 이단에서 해제되었다. 그러나 당시 산해원교회 건물 구경 갔던 류광수 목사는 아직도 합동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어 있다.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 김기 관련설은 류광수 목사가 수없이 사실이 아님을 부인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심지어 19921월 고신 남부산노회가 류광수 목사를 가입 시킬 때 베뢰아측에 직접 사실을 확인바 사실무근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괴롭히는 이유가 되었다. 이 모두가 법적으로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부산노회의 사문서 위조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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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노회 임시회의록과 달리 면직공고문이 조작되었음을 보도한 신문자료

 

1991129일 가장 먼저 류광수 목사의 면직 건을 기사화 한 복음신문기자가 당시 부산노회 임시노회 회의록을 입수하여 면직공고문과 대조한 결과 류광수 목사 베뢰아 아카데미 수료설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고 확인하고 당시 면직공고 문건을 작성한 자를 수소문하여 찾으니 부산노회 회록서기인 P목사가 이것을 임의로 날조하여 면직공고에 넣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분명 형법상 사문서 위조행위로서 불법을 자행한 것이다. 또 회의록 말미에 류 목사가 진술한 대로 산해원교회에 간 것은 가건물 지은 것에 대한 견학, 녹음 테잎에 기록된 것은 내용을 오해 한 것등으로 노회의 일방적인 공격에 대해 전면 부인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참조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이태화 목사의 이단시비와 해제 과정을 살펴보자

이태화 목사의 이단 시비와 해제

당시 산해원교회는 경남지역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교회였다. 교회 이름이 보여주듯 마산 · 진해 · 창원을 지역으로 삼았고, 성장도 놀라웠다.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그의 설교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이태화는 경남 진해서부교회(이병철목사 시무)에서 세례를 받고 집사와 장로가 되었다. 이병철목사의 추천으로 합동측 총신대학에 입학하여 신학교육을 받고 1980년에 졸업하였다. 전도에 열심을 내었고 성장하는 교회들을 탐방하였다. 신학교를 졸업한 이태화 목사는 마산백화점 5층에 기도처를 개척하였다 개척예배의 설교는 이병 철목사가 하였다. 그런데 진해의 교인들이 마산으로 모여들어 교인수가 3백명, 5백명으로 늘어나고 본 교회는 쇠퇴하였다. 

이때 L목사는 이태화의 이단설을 제기하였다. 당시의 죄명은 신학교 졸업반 때 학우 30여명과 성장하는 교회를 탐방하였는데 김기동의 성락교회가 포함되어 김기동에게 배웠다는 죄목이다. 결국 1983년 합동측은 베뢰아의 귀신론을 추종한다고 하여 그를 제명, 출교 시켰다.

그러자 이태화 목사는 예장 합동정통에 가입하여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역시 합동정통에서도 귀신론을 문제시하여 제명하려하자 1987년 교단을 탈퇴하였다. 

그 후 1992년 합동측 경남노회가 그를 영입하자 마산시 기독교 연합회를 중심으로 반대와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자 합동 총회는 7인위원회를 조직하고 조사하였으나 이단 여부를 밝히지 못하였다. 이듬해의 총회에서는 7인전권위원회 (목사4, 신학자 3)를 구성하였으나 이단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이에 이태화 목사는 19941031일에 기독신문에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사태는 종결되었다. 후에 산해원교회는 산해원 부활의교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이후 합동측은 주요 집회에 이태화 목사를 강사로 세우는 한편, 합동측의 정치권 인사들이 산해원교회에 출입이 잦았다고 증언한다. 

류광수 목사의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

부산회의 면직처분에 대한 류광수 목사의 증언이다. “1991412일 경 주위 교회 몇몇 분이 노회에 상정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상정한 분들이 저 개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 교인들이 당신 교회(본인의 교회)에 가고 있는 것 같으니 목회 윤리상 그런 일이 없기를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몇 교인이 저의 교회에 오는 일을 저는 사실상 잘 알기가 힘들었고, 예배 중에 들어오는 사람을 미리 알고 막기에는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1412일 경 부산노회에 상정하기를 이태화 목사 관련성을 제기하고 전도활동 중단을 결의하였습니다. 물론 저희 교회의 장로님과 몇 분이 조립식 건물 건축을 참고하기 위해 갔었으나 이태화 목사를 잘 알지도 못하고 서로 간에 아는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저는 경험이 없는 부족한 생각에 저와는 아무 관련 없는 부활의교회(당시 산해원교회)와 관련시키며 전도활동을 중지시키는 일에 분개하여 철없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것이 부산노회를 탈퇴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개월 뒤에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19911124일 경 부산노회에서 저를 면직시켰습니다. ” 

고신 남부산노회 류광수 목사는 이단성이 없다입증과 영입

예장 합동부산노회를 탈퇴한 류광수 목사에게 당시 함께 다락방 전도운동을 하던 고신측 박창환 목사, 김영식 목사 박동출 목사 조긍천 목사 등이 고신총회 가입을 권유했다. 그리고 19921월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남부산 노회에 정식 가입을 하게 된다. 당시 199218일에 교단가입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영식 목사의 이름으로 남부산노회장에게 발송된 공문내용을 보면 류광수목사 및 동삼제일교회의 교단가입 청원의 건이란 제목의 내용가운데는 류 목사가 베뢰아와 전혀 무관하다고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남부산 노회는 류광수 목사를 검증한 결과 이단성이 없고 합동측 부산노회가 주장한 김기동 베뢰아 관련설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영입을 가결하였다.

그러나 고신총회는 동삼제일교회가 속한 지역이 남부산노회 권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안타깝게도 가입을 불허하고 결국 가입은 무효화 되었다.

그러나 고신 남부산노회의 가입결의 과정에서 류광수 목사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합동측 부산노회의 면직처분이 부당한 것임을 반증하는 사건이 되었다. 

전도사화로 촉발된 부산노회 이단조작 음모 사건을 마무리하며

합동 부산노회 면직사건은 일부 비뚤어진 정치 목사들이 빚어낸 이단 조작 음모임이 드러난 것이었다. 문제는 부산노회의 면직 처분내용은 진실여부를 떠나 각 교단이 공식적으로 인용하며 다락방 전도운동을 이단으로 몰아가는 원천을 제공한 것이다. 이 결과 류광수 목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그와 함께한 수많은 목회자들과 수십만의 성도들이 지금도 그 이단의 덫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큰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류광수 목사가 전도활동에 올인하는 과정에서 노회회원들과의 관계가 소원한데서 빚어진 인재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도를 금지시키고 이단의 누명을 씌워 면직한 것은 한국교회사에 부끄러운 한 역사로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 발행인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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