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용화 박사, “개혁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2014-03-28 09:21:19  인쇄하기


“자유주의 신학이 가르치는 바, 성경은 인간적인 문학작품이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고, 독자가 읽을 때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주장을 우리는 반대한다.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은 객관적으로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


최근 개혁교단 인준 신학교인 개신대학원대학교 소속 일부 교수가 자유주의 신학 논쟁에 휩싸이자 나용화 교수가 선배학자로서 개혁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알미니우스주의, 세대주의 신학 등과의 차이를 명쾌하게 비교 정라하여  기고를 하였다.  ▲ 나용화 박사 (사진.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총장, 명예교수]


[다음은 기고 전문 ] 

들어가는 말

우리 개혁 교단은 정통적 개혁 신학과 신앙을 성경적인 것으로 알고 믿으며 따른다. 그러기에 정통 개혁신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모든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교회 직분자들 그리고 신학생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마땅하다. 우리의 개혁 신학은 성경과 칼빈의 신학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나 있는 신학에 대한 이해, 그리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의 신학적 특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교회와 루터, 알미니우스, 자유주의 신학 및 세대주의적 근본주의 신학과의 차이점을 통해서 개혁 신학의 주요 교리와 특징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1. 개혁 신학의 계시와 성경관

개혁 신학은 신구약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을 믿는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인정하는 외경을 우리는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신학이 가르치는 바, 성경은 인간적인 문학작품이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고, 독자가 읽을 때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주장을 우리는 반대한다.


우리가 믿는 바대로는, 신구약 66권만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까닭에 본래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다. 객관적으로 신적 권위가 있으며, 성경 자체에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나타나 있고(독자적 신임성, self-authenticity), 항상 있으며 살아 활동력이 있다. 성경은 죽은 문자가 아니고, 인간적인 작품도 아니며, 성령으로 감동되어 기록된 까닭에 거짓이 없고(infallible)오류도 없다(inerrant). 성경에 고대근동지방의 신화와 법률 및 문화와 생활습관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나 성경 저자가 그 같은 신화와 법률 등을 직접 자료로 삼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성경 저자들은 이방인들의 신화와 법률 또는 용어 등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진리의 계시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다. 그러기에 성경은 본래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특별계시요, 하나님의 말씀이다. 고대근동지방의 신화와 법률과 문화와 생활습관 및 언어를 알면 성경을 이해하는 데 다소간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계시가 왜곡된 상태로나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의할 것은, 성경의 저자들이 고대근동지방의 신화와 언어 등을 직접적인 자료로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계시가 이방 세계의 신화와는 사상적으로 근본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신약의 복음서들의 경우도, 본래의 자료들이 지금의 완성된 형태로 된 것을 자유주의 신학은 부인하고, 후대의 편집자들이 자료를 찾거나 만들어 편집한 것으로 주장한다. 개혁 신학은 이같은 성경과 계시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 곧 문서설과 편집설 등을 반대한다. 


2. 칼빈의 신학의 핵심

칼빈은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젊은 나이에 종교개혁 사상을 숙지하였다. 그 역시 루터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성경”, “오직 예수님”, “오직 믿음”을 그의 신학의 원리로 삼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다. 칼빈은 루터가 주장하는 바, 그리스도의 부활한 몸의 편재성과 그리스도가 몸으로 성찬에 임재하여 함께 있다는 공재설 그리고 교회의 정치체제 등에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으나, 종교개혁의 주요원리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칼빈은 후대에 알미니우스가 문제 삼은 바 있는 예정론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특별히 강조하였다. 칼빈에 의하면, 우리는 본래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기에 전적으로 부패하였다. 우리의 공로로는 구원 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기에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선택적으로 베풀어지는 까닭에 그리스도의 속죄는 수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사람 편에서는 거절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그래서 성도의 구원이 끝까지 보장되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아버지 사랑(fatherly care)과 그 사랑을 앎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순종하는 경건(piety)을 핵심적으로 가르쳤다. 그 경건에서 참된 믿음이 나오고, 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의롭다 함을 받을 뿐 아니라 동시적으로 거룩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자유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여 산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삶으로 이 땅에 임한다.

칼빈의 예정론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론에서 결과적으로 가르쳐지는 교리이고, 그의 핵심적 교리가 아니기 때문에, 칼빈 생전에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1563)이나, 우리나라 장로교회가 처음에 채택한 12신조에는 예정론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칼빈의 신학에서 주요한 것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는 성화와 칭의의 교리이다. 그의 경우, 성화와 칭의는 동시적이요, 항상 함께 하며 구원의 전 과정에 걸쳐 있다. 즉 우리가 평생 힘써 이루어야 할 구원의 과정이 성화와 칭의이다. 성화 없는 칭의 없고, 칭의 없는 성화 없다. 그의 경우, 성화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회개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칭의는 죄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말미암아 선언된다. 이 칭의는 의인된 사람 자신에 대하여서 뿐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선행, 곧 복음에 합당한 삶과 회개의 열매에 대하여서도 선언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믿음과 회개를 언급한 다음 곧바로 성화를 다루고 그 다음 칭의를 언급하면서 선행을 다룬 것이다.

칼빈이 말하는 선행은 성격상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 개혁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공정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인애와 은혜와 긍휼을 베풂으로 이 땅에 임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성경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는 사회개혁과 문화개혁과 함께 개인의 영적 갱신이다.  


3.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의 신학적 특징

성경과 칼빈의 신학사상에 기초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알미니우스 학파가 칼빈의 예정론을 특별히 항변하기 시작한지 40년쯤 되던 1647년에 만들어졌다. 그런 까닭에 예정론이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 중심의 교권주의와 성례에 의한 구원 등을 반대한 까닭에, 성경의 신적 권위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구원의 확신 그리고 양심의 자유뿐만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되심을 강조하였다. 교황의 인간적 권위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절대적 신적 권위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가르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신앙과 생활을 위한 절대 무오한 규칙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 앞에서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고, 진리의 말씀이 주는 양심의 자유를 따라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에 의하면, 메시아를 계시하는 구약의 방식, 곧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예표와 희생제사 등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계시의 수단, 곧 일반계시의 경우 인간의 본성, 자연현상, 역사의 사건과, 특별계시의 경우 신현(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해 나타나심), 예언(말씀으로 나타나심), 이적과 표적 등은 지금도 여전히 있으며, 영원한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계시의 수단들을 사용하여 지금도 계시하고 계신다.   

이 계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과 연합되고, 그분 안에서 의롭다 함과 거룩함을 얻는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얻어 누린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세속 정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이로써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의 악한 문화를 변혁시킨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항변을 의식하여 칼빈의 예정론을 강조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권주의와 성례주의 등을 반대한 까닭에 성경의 신적 권위와 종교개혁의 기본 교리와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등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맺는 말

정통적 개혁 신학은 루터의 종교 개혁의 원리들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오직 은혜, 오직 성령, 오직 예수님,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등을 강조하여 가르친다.

한편, 개혁 신학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이원론적 사상, 잘못된 성경관, 인본주의적인 교권주의, 구원의 확신을 주지 못하는 성례주의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혁 신학은 교회가 세속 권력 위에 군림하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영적 영역인 교회와 세속적 영역인 국가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개혁 신학은 신구약 성경 66권만이 객관적으로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개혁 신학은 알미니우스주의와 다르다. 알미니우스주의는 죄인의 전적 부패를 인정하지 않고, 의지의 자유가 죄인에게도 있다고 가르친다. 이에 반하여 개혁 신학은 죄인이 전적으로 부패하여 영적으로 죽어 있으며, 영적 선을 행할 수 없고, 따라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것을 믿고 가르친다. 그 믿음은 홀로 가만히 있지 않고 사랑과 정의를 행한다. 즉 선행을 열매 맺는다는 것을 개혁 신학은 강조한다. 이로써 교회 개혁, 사회 개혁, 문화 개혁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개혁 신학이다.

개혁 신학은 성경관과 기독론 등에서 자유주의 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혁 신학은 성경이 객관적으로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그리고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믿는다.

그리고 개혁 신학은 사회 개혁과 문화 개혁을 부정하는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와도 다르다. 개혁 신학은 복음 선포와 함께 복음을 통한 사회 참여 곧 사회 개혁을 강조한다. 개혁 신학은 일방적 내세 지향주의가 아니고, 지금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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