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예장합동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상대로 'WCC 공동선언문과 다락방 이단 해제에 협력한 교단 인사들을 제명해 달라는 성명'것에 대해 '업무 방해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한기총과 홍재철 대표회장, 김만규 위원장(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회)은 비대위가 1월 23일자 <기독신문>에 낸 성명을 문제 삼았다. 성명에서 비대위는 한기총의 WCC 총회 협력은 '배도 행위'라며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길자연 전 총회장과 홍재철 대표회장을 비판했다.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으로 다락방이 이단이 아니라는 연구 보고서를 올린 김만규 위원장과 유장춘 서기를 엄벌해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고소장에서 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은 예장합동에서 그동안 WCC를 반대하던 요인들을 진보적인 교단들이 수용한다는 취지에서 공동선언문이 작성됐다고 했다. 진보 진영의 신앙을 예장합동의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하나 되도록 한 것이 선언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비대위는 배도 행위로 몰아붙였고, 이는 한기총의 수장인 홍 대표회장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한기총은 비판했다. 또 "불법 단체인 비대위가 정부 공인 종교 단체 제1호인 한기총에게 홍재철 목사를 대표회장에서 사퇴케 하라. 목사직에서 제명하라"고 하는 것은 월권이며 업무 방해 행위라고 비난했다.
김만규 위원장은 자신이 다락방 이단 해제를 주도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대위 전문위원장으로서 다락방 류광수 목사를 학문적·신학적으로 검증한 것뿐이라고 했다. 전문위원회는 다락방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보고서를 올렸을 뿐이고, 이를 한기총 이대위와 실행위원회가 채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목사를 제명하는 건 해당 교단 재판국의 관할인데, 비대위가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윽박질렀다.
성명을 실은 <기독신문>에 대해서는 "광고물의 진실성을 판단하여야 할 의무"를 방기했다고 했다. <기독신문> 사장 백영우 장로와 이길환 편집국장, 우인권 광고국장에게 명예훼손의 책임을 물었다.
한기총은 비대위 임원 및 자문위원, <기독신문> 중역 등 32명을 고소했다. 피고소인이 연대하여 한기총에게 3억 원, 홍 대표회장에게 1억 5000만 원, 김 위원장에게 1억 원을 손해배상 하라고 한기총과 홍 대표회장, 김 위원장은 통보했다.
한편, 비대위는 3월 20일 대전동문교회(김충도 목사)에서 전국 노회장단 회의를 열고 한기총의 고소 건에 대한 대비책을 논의했다. 고소장을 받은 비대위 서북지역 부총무 이봉철 목사가 "총회 정상화를 위해 임무를 부여받은 비대위가 본래 임무에 집중해야지 굳이 WCC와 다락방 문제까지 건드려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느냐"며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비대위 자문위원단 홍성헌 목사는 "이단 문제와 WCC 문제는 교단 신학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문제다. 총회 정상화를 외치는 비대위가 묵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자문위원단 이종철 목사는 "속회 총회, 총회장·총무 불신임 등의 맡겨진 임무 안에서 일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법원에서 날아온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는 데 빨리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 비대위는 3월 20일 대전동문교회에서 전국 노회장단 회의를 열고 한기총의 고소 건에 대한 대비책을 논의했다. 서창수 비대위원장은 32명이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답변서를 보내기는 어려우니, 피소당한 이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대처 방법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비대위는 고소 대비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홍재철·김만규 목사를 만나 고소 취하를 요청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일환 행정부위원장과 김정호 실무총무, 언론홍보팀 김상현 목사가 담당하기로 했다.
▲ 서창수 비대위원장은 피소당한 이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대처 방법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김상현 목사는 고소 건은 비대위를 흔들기 위한 것이라고 파악했다. 그는 "소송에 들어가더라도 반드시 비대위가 이길 수밖에 없다. WCC를 반대하고 이단과 관계하지 않는다는 총회 결의가 우선하고, 공익을 위해 한 것이니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비대위가 위축되지 말고 봄 노회에서 헌의안을 올려 개혁을 위한 의지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가을 총회에 개혁 성향의 총대들을 더 많이 선출되도록 일치단결하자고 덧붙였다.
일부 자문위원 "성명서 사전 동의 안 해"
소장을 받은 일부 자문위원들은 3월 20일자 <기독신문>에 해명서를 실었다. 이건영·김기철·김순열·오정현·오정호·박용규·현상민·최병헌 목사는 비대위 자문위원으로 위촉장을 받은 적이 없고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것을 수락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비대위가 성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의사를 물어오거나 지지 여부를 문의해 온 사실이 없다며, 자신들은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들 중 이건영(인천제2교회)·최병헌(낙원제일교회) 목사는 김만규 위원장이 발행하는 신문인 <기독신보>에 사과문을 싣기도 했다. 비대위가 성명 발표 전에 사전 동의 여부를 묻지 않았다며,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 죄송함을 표현한다"고 두 목사는 해명했다.
이건영 목사는 "사과문으로 보낸 게 아니었다"고 했다. 이 목사와 같은 노회 소속인 인천노회 김정설 목사(광음교회)를 통해 "비대위 성명에 동의한 적 없다"는 내용의 글을 보내면 피고소인 명단에서 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팩스로 간략하게 써서 보낸 글이 사과문으로 게재되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김만규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간직하는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기독신보>에 사과문이 나간 뒤 김 위원장 측에서 홍재철 대표회장에게도 다시 글을 보내야 피고소 명단에서 빼 줄 수 있다고 전해 왔고, 이 목사는 "사과문이라는 이름으로 또 올라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거절했다.
<마르투스>와 통화에서 김만규 위원장은 "피고소인 명단에서 빼 주려고 했다. 하지만 개인에게만 사과하는 건 소용없다. 한기총에게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법정에서 만나면 된다. 사과문이 아니면 글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8명의 목사가 <기독신문>에 낸 해명서에 관해서도 "아무 소용없다. 법정에 서야 할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고소 취하를 요청하겠다는 비대위를 향해서는 "성명을 낼 때 언제 의논하고 냈나. 만날 이유가 없다. 사과하고 손해배상을 하면 그때 가서야 만나 줄 수는 있다"며 "고소 취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