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이고, 성령의 역사 속에 그림이 그려
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그림을 보는 사람의 영혼에
힘을 주고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평안함을 옮기는 퍼포먼스를
하는 작업이다.
지극히 보잘것 없고 작은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엄청난 사람에
게 영향을 줄 영적 퍼모먼스가 이루어지는 것을 나는 믿는다."
[사진:권남숙 사모 /필라델피아 예일장로교회]
<광야의 싯딤나무>
광야에 유일하게 서있는 싯딤나무의 강함을 표
현했습니다.
약한 것 같지만, 가장 강하며 단단하고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나무, 곧 언약궤를 만든 나무입니
다.
◇예수님을 믿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예수님을 믿기 전, 저의 타이틀은 경상북도불교신도회 회장 집 딸 (4남 1녀)이었습니다. 우상 가문이 저의 타이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편 이문식 목사님(필라델피아 예일교회), 오빠는 안동 순복음교회 목사님, 남동생 중 한 명은 안동 강동교회 장로로, 한 명은 산돌선교교회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시댁 가문도 복음 안에 들어와 시아버님과 시동생도 장로님과 안수집사 직분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모든 가족이 복음 안으로 들어오는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의 언약을 잡았는데, 하나님께서 시간표에 따라 대표적인, 시대적인, 기념비적이고, 불기항력적인 축복을 복의 근원인 먼저 부른 저와 남편을 통해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예수님 믿기 전 나의 전문 미술
그림을 어려서부터 그렸지만 잘 그리면 칭찬을 받고, 또 그림을 통해 행복해지기를 원했습니다. 세종대학교 미술대학을 들어가서 여러 가지 상도 받고 열심히 했지만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나의 출세를 위해서 그리는 작업이 되다 보니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남들보다 잘 그려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의 명예와 이생의 자랑의 도구로 전략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미술교사로 근무하다가 결혼한 후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그 시기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생각은 나는 유명한 화가가 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곳으로 유학을 가서 멋진 화가가 돼야 한다는 생각.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 나의 현실에 날마다 원망, 불평, 환경을 탓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난 이후
남편(이문식 목사님)이 다니던 롯데 연구실을 그만 두고 감리교 신학대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을 교육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미술학원을 통해 경제를 담당하게 되면서부터 화가에만 전념하려고 연 화실이 또 나의 꿈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하나님이 그 미술학원을 얼마나 축복하셨는지, 남편의 신학 동기의 등록금을 대는 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재능을 주시고 그림을 그리게 하신 이유는 남편 신학과 그리고 개척하고 난후에 작은 교회의 월세와 교회 운영을 위한 계획이었구나’ 라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는 그림을 그려야 될 사람이야! 나는 언젠가는 그릴 거야!’ 늙어서도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비밀을 누리면서 왜 하나님이 나를 멈추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음악도, 미술도, 영화도 표현하는 모든 것에는 그 작가의 영적 배경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예술인데 저의 영적 상태는 세상의 명예와 욕심과 불교적인 배경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그리지 못하게 하시고, 복음 안에서 하실 것을 준비하시고, 저를 먼저 복음의 사람으로 메시지를 준비시키셨음을 깨닫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순간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포기하고, 물러설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이고 계심을 날마다 확인합니다. 모세처럼 40년 세상 지식을 알게 하시고, 40년 복음으로 훈련시켜, 40년 문화 바꾸는 사람으로 사용하시는 메시지가 저의 작가 일기와 같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완벽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높이시고, 인도하심을 보게 됩니다.
◇후대 렘넌트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절대 자기의 재능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그 꿈을 복음 안에서 데리고 다녀요. 놓으시면 안 돼요. 저는 20년을 복음 안에서 끌고 다니고 놓지 않았어요. 저의 전문기능이 이렇게 세계화될 줄 몰랐어요. 어느 날 말씀과 제가 가진 기능이 일치하는 시간표가 되니 모든 문을 하나님이 여시기 시작했어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뉴욕에서 오랫동안 작가 생활한 것도 아닌데 지난 4년 동안 작품 활동은 평생 제가 한국에서 하고 싶었던 몇 배의 활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한국에 많은 작가들이 맨해튼 챌시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이 평생의 꿈일 수도 있는데, 하나님이 문을 여시니 만남, 물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지혜,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일 년에 개인전을 3번 한다는 것이 옛날 저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그때 정말 ‘이 문화 현장에 복음 가진 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대표적인 축복의 증인으로 세우시는구나. 유일성의 응답을 주시는구나’ 하며 제자와 전문 기능가진 기도 팀과 렘넌트들과 뉴욕 현장에서 함께 문화를 바꾸는 전시회도 기획하고 여러 가지 응답을 받아가고 있습니다.
1년 전에 남편을 따라 필라에 와서도 하나님은 계속 생각지도 아니한 곳에 저를 세우시고, 이방인과 임금들 앞에 설 기회를 계속 진행하고 계십니다. 내년에도 필라 드락셀대학에서 개인전이 잡혀있고, 뉴욕에서 9월에 개인전이 잡혀 있습니다. 절대 렘넌트들은 환경을 핑계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정말 복음을 진짜 믿고, 하나님의 방향인 세계복음화 방향을 잡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마음에 소원도 주시고 이루어 나가심을 믿어야 됩니다. 내가 하려고 할 때는 너무나 어려웠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니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도 너무나 쉽게 됨을 날마다 확인합니다.
응답을 받을수록 제 가슴속에 남아있는 한 가지가 선명하게 드러나요.
“하나님! 이 시대 죽은 교회문화 살리는 복음 운동하는 자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저의 작은 기능이 흑암 문화 꺾는 복음 문화의 발판이 되게 하옵소서.”
/권남숙 사모(필라델피아 예일장로교회)